“해방 직후 한국인은 정치적으로는 우파 지도자와 서구식 대의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구조를 지지했습니다.”
박명수(64) 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해방 정국 당시 한국인의 정치 성향 및 경제관을 이렇게 정의했다. 박 소장은 “지금껏 한국사회는 해방 정국에서 중도나 좌익이 우세했다는 주장과 1948년 민주주의 정부가 탄생했다는 역사적 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다”며 “이 같은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미군정 여론조사 자료를 연구했다”고 말했다.
역사신학자인 그가 해방 이후 한국인의 정치 성향을 연구한 것도 그렇지만 학계 다수 견해와 다른 입장을 밝힌 건 이례적이다. 박 소장은 “한국 기독교와 한국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다 보니 기존 한국사회 연구에 의아한 부분이 생겼다”며 “한국 기독교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한국사회 연구도 동시에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군정이 1946년 3∼7월 진행한 비정기 여론조사 결과에서 줄곧 ‘북한과 같은 토지개혁을 원하지 않지만 기업은 국유화를 원한다’는 응답이 높은 것에 주목했다. 토지는 유상분배를 원하나 일본인 소유 기업은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중도적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 지역 1908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김구, 이승만 등 우익 정치인의 지지도(70%)가 박헌영, 여운형 등 좌익 정치인(30%)보다 높다는 점을 의미 있게 해석했다.
종합해 볼 때 해방 이후 한국인의 정치 성향은 우익에 기울었으되 경제관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일정 부분 타협한 사회민주주의 경향을 보인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미군정이 우익 성향이라 여론조사 결과도 우익 우세라 보는 이들도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며 “미군정은 중도 인물을 원했기에 오히려 우익 성향 답변이 다수면 46년 3월처럼 여론조사를 다시 실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군정의 여론조사 방식은 무작위 대면 조사를 한 것으로 오늘날 기준에서 봐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8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대에서 열린 ‘제22회 영익기념강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 소장은 “해방정국 민심을 읽는 일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며 “이 연구가 대한민국의 출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박명수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해방 직후 한국인들 우파 지도자 지지”
입력 2018-04-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