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전두환정권이 이를 ‘우발적인 사건’으로 규정하며 파장 최소화를 위해 안간힘을 쓴 사실이 29일 공개됐다. 미국과 소련, 중국과 소련 관계가 개선 조짐을 보이던 시기 북한이 남북 연방제와 중립국 창설을 미국 측에 제안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외교부가 비밀 해제한 외교문서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모두 1420권 23만여쪽으로 주로 1987년도에 만들어진 문서다. 정부는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심의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최광수 외무부 장관은 1987년 1월 19일 방한한 미국 하원 경제사절단을 면담했다. 면담록에 따르면 존 포터 의원은 최 장관에게 “금일 한국 언론에 보도된 사건은 미 언론의 주목을 받아 한국의 민주적 노력을 저해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최 장관은 “이번 사건은 하나의 우발적 사건”이라며 “취조를 빨리 끝내 성과를 올리려는 하부 관리의 과도한 의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1월 19일은 박종철 사망 사건 관련 치안본부장이 수사관의 가혹행위 사실을 시인한 날이다.
정부는 그해 2월 열린 범국민 추도식도 ‘폭력에 의한 민중봉기 시도’로 규정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홍보할 것을 주문했다.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진행되던 1987년 9월 미 정부가 “어떠한 경우에도 군사적 방법은 피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한 사실도 드러났다.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9월 방한 중 정호용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군이 동원된다면 한국군에 대한 매우 안 좋은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소련을 통해 미측에 남북 중립국 창설을 제안한 사실도 공개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7년 12월 9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에서 북측의 제안이 담긴 문서를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에게 직접 건넸다. 이 문서엔 남북 각각 10만 미만의 병력 유지, 핵무기 포함 모든 외국 군대 철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남북으로 구성된 연방공화국 창설 및 공화국이 중립국가이자 완충지대임을 선언하는 헌법 채택, 연방공화국의 단일 국호 유엔 가입도 포함됐다. 미측은 이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 역시 “거창하고 현실성이 없으며 구체적 내용에 있어 새로운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신영 국무총리가 1987년 1월 마리우 소아르스 포르투갈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정기 교육을 못 받은 위험스럽고 방탕한 인물”이라고 평가한 부분도 눈에 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우발적으로 발생”… 전두환정권, 파장 최소화에 안간힘
입력 2018-03-30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