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9년… 재개발 현장은 여전히 ‘충돌 중’

입력 2018-03-29 19:39 수정 2018-03-29 23:30
서울 성북구 장위7재개발구역의 마지막 남은 주민인 조한정씨가 29일 철거로 황량해진 동네를 바라보고 있다. 윤성호 기자
조씨의 집인 2층 상가건물 좌우편 골목에 검은 양복을 입은 용역직원들이 철거를 집행하려고 모여 있다. 건물 옥상과 주변에선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이 용역직원들을 지켜보고 있다. 윤성호 기자
용역직원-철거민 긴장 팽팽… 집행관 섣불리 집행 못해
처음 보상 반대 130명에서 결국 조한정씨 1명 남아 “집값 45% 받고 나가라니…”
조합에 강제 수용권 부여 재산권 침해… 대책 필요


‘왱’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경비용역 직원 20여명이 서울 성북구 한천로101가길 텅 빈 골목으로 밀려들어왔다.

29일 오전 9시15분 서울 성북구 장위7재개발구역. 사이렌은 마지막 철거민인 조한정(58)씨가 사는 건물 옥상에서 울렸다. 지난 23일 강제집행 이후 주어진 5일 유예기간이 지난 뒤 강제철거가 다시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장위동 197-54번지 빨간 벽돌의 2층 상가주택에 살고 있는 조씨는 이 골목에 마지막 남은 주민이다.

용역직원들은 순식간에 골목 양쪽을 막아섰다. 골목 모퉁이 언약교회가 있었던 건물 안팎에서는 조씨와 학생 등 30여명이 전열을 정비했다.

강제철거 집행 예정 시각은 10시. 집행관과 재개발조합 관계자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골목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교회 종탑 아래 자리 잡은 이들은 구호를 외쳤다.

“강제 집행 중단하라.” “합법적인 집회 방해하지 마라.” “조합은 대화에 나서라.”

집행관은 섣불리 집행을 하지 못했다. 집행관은 30∼40분 정도 관계자들과 얘기하다가 현장에서 떠났다. 용역 직원들이 떠나자 철거민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언제 다시 철거를 집행하려고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옹산 참사가 벌어진 지 9년이 지났지만 재개발 현장에서는 여전히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장위7재개발구역은 2005년 뉴타운 사업지구로 지정됐다. 지난 2013년 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지면서 조합과 남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됐다.

장위7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철대위)에 따르면 강제철거가 본격 시작되기 전만 해도 재개발조합의 보상에 반대하는 주민이 130여명이었다. 하지만 평균연령 65세의 노쇠한 이웃들만으로는 하루하루 텅 비어 가는 동네를 지킬 수 없었다. 조씨는 “목숨과도 같은 집의 감정평가액은 실거래가의 절반도 안 된다”며 “대출금과 양도세, 세입자들의 임대보증금을 내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이 없다”고 했다.

재개발조합에는 토지수용권이 주어진다. 재개발구역 내의 토지와 건물을 강제로 취득할 수 있는 권리다. 재개발사업은 주민의 75%만 동의하면 되기 때문에 나머지 주민들은 집과 건물을 강제로 내놔야 하는 처지가 된다. 전문가들은 강제 집행을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표성이 떨어지는 조합이 사업에 동의하지 않은 주민들의 재산을 강제로 사들이는 것은 사유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알박기를 막기 위한 제도지만 반대로 헐값에 보금자리를 내놔야 하는 이들은 당장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이곳 재개발조합은 조씨 건물의 가격을 실제 거래가액의 45%로 평가했다. 시장 한복판에 자리 잡아 1층에는 약국과 김밥집 등 가게가 빼곡하게 자리 잡았었고 교회도 있었지만 조합은 일반주택으로 분류했다. 조씨는 “대출금과 양도세, 세입자들의 임대보증금을 내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이 없다”고 했다. 이 동네에서 조씨와 함께 30여년을 살았던 심대구씨도 집을 조합에 넘기고 받은 돈으로 경기도 포천으로 가서야 보금자리를 구했다.

조합 측은 “감정액은 조합이 일방적으로 책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국가 공인 자격을 가진 감정인들이 와서 책정한 건데, 이것을 조합이 일방적으로 저평가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재개발조합에 참여한 주민 입장에선 소수의 반대자들 때문에 공사가 지연될수록 손해를 보니 조씨와 같은 철대위 주민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철거민과 조합원의 대결이 길어질수록 강제수용권을 가진 조합은 합의 대신 강제집행을 선호하게 된다.

용산 참사 이후 다양한 보완책이 논의됐지만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돈이 된다’는 믿음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상태”라며 “재개발 관련 법과 제도에 오랜 보금자리에서 내몰리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우삼 황윤태 기자 sam@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