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자살예방 교육이 진행 중인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자살예방 전문강사 교육을 수료한 기자는 보조강사로 학생들을 만났다. 교실에 들어서자 차분하면서도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최근 20대 아들과 10대 딸, 어머니 등 일가족 3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가족 참변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힘든 상황으로 지쳐갈 때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힘들어하는 주변인을 마주했을 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무의식적인 끄덕임과 형식적인 대답이 오가던 교실 분위기가 바뀐 건 학생들이 짝꿍과 위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부터였다.
“괜찮니? 요즘 힘든 일 있니?”
표현이 익숙지 않아 곳곳에서 쑥스러워하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내 표정과 행동에서 분명한 변화가 감지됐다. A양(17)은 “또래 친구들의 자살 소식을 들으면 ‘혹시 나도 스트레스를 받다 저런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다”며 “앞으로는 나를 더 소중히 여기고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용기를 내서 안부를 물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은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대표 조성돈 교수) 주최로 진행됐다. 교육 참가자들은 친구나 주변인의 자살을 막아주는, 이른바 ‘게이트 키퍼’로 양성되는 것이다. ‘자살 방어막’으로 일컫는 게이트 키퍼는 정부가 내놓은 자살예방 계획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가 자살 예방을 위해 한국교회의 협력을 요청하는 핵심 분야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게이트 키퍼 역할에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 거룩한빛광성교회(정성진 목사)가 대표적 사례다. 교회는 매년 정기적으로 자살예방 교육의 일종인 ‘생명보듬 양성교육’을 비롯해 ‘중·고등부 생명존중문화 교육’, ‘어린이 큰마당 생명존중 캠페인’을 진행한다. 교회 구성원 전체가 ‘생명지킴이’로 세워지고 있는 셈이다.
교회 측은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안전망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2013년 교회 내 평신도 자치단체인 광성라이프호프를 설립해 파주시 건강증진센터와 함께 노인자살예방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고양시 정신건강센터와 협력해 자살예방 매뉴얼을 보급한다. 자살예방 교육을 원하는 지역 내 교회, 군부대를 찾아가 직접 교육하고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정성진 목사는 “우리 사회가 출산율 저하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귀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외면해 왔다”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건강하게 가꿔가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란 공감대를 가진다면 사회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양감리교회(임용택 목사)는 ‘생명을 살리는 건강한 공동체’를 모토로 하고 있다. 지역 복지관과 협력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0주간 생명존중교육을 실시한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리더십 콘퍼런스에선 자살예방 특별교육을 진행한다.
매년 9월 개최하는 ‘사람사랑 생명사랑 걷기축제’에는 평균 1만여명이 참가할 정도로 지역 대표 축제가 됐다. 축제 당일에는 지역 방송사, 대학, 고등학교, 소방서를 비롯해 50여개 시민단체가 부스를 마련한다. 임용택 목사는 “규모를 떠나 작은 실천만으로도 교회가 지역 사회에 생명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다”며 “생명이 지닌 가치는 종교를 초월해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고 교회가 사회에 본을 보일 수 있는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
[생명존중문화, 교회가 함께]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곳곳에 ‘생명 지킴이’ 세우자
입력 2018-03-3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