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간 1만7000명 만나고 국내서만 8300㎞ 이동
수도권 본부장 때 성장률 견인 초고속 승진… 역대 2번째 파격
고객이 좋아하는 것 선물하고 때론 드라이빙 서비스도
수익 20% 끌어올리기 스타트 디지털분야 반걸음 앞서 갈 것
오직 영업으로 승부를 봤다. 시중은행 점유율이 높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박 터지게 경쟁했다. 지난 1월 은행장에 올라 석 달이 지난 현재까지 직원을 포함해 1만7000명을 만났고, 8300㎞를 이동했다. 미국 뉴욕지점 방문 등 국외 출장은 빼고 국내에서만 오고간 거리다.
다음 달 초 취임 100일을 앞둔 이대훈(58) NH농협은행장을 29일 서울 중구 농협은행 본점 19층 행장실에서 만났다. 키 185㎝의 듬직한 체구에 느릿한 말투로 점잖은 인상이지만 속에는 열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헤어스타일은 흰머리 섞인 파마머리를 고수한다. 지극정성으로 고객을 보살펴 영업의 신으로 등극하게 된 비결을 이 행장에게 들어봤다.
-파마머리가 트레이드마크다.
“한 달 반마다 용산구 집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다. 1990년 팀장 때부터 전문성 있어 보이고 차별화를 위해서 말기 시작했다. 28년 전엔 남자가 미장원을 가기 쑥스러웠다. 그래도 세련되게 보였음 했다. 미용실은 동네 사랑방이다. 정보가 모이고 반응이 나온다. 2시간 정도 파마를 할 동안에도 농협은행 상품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진짜 은행장 맞아요?’라고 묻기도 한다. 미용실 실장님과 친해 은행 사은품을 가져다 놓았다. 고객이 농협은행에 원하는 걸 거기서 듣는다. 농협에 있는 한 파마를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유리하다.”
이 행장은 실로 영업의 달인이다. 2004년부터 10년간 경기 수원 광교 일대 지점장을 맡았고 실적 1위를 기록했다. 덕분에 전국 지점에서 2명만 뽑아 본점 부장으로 올리는 인사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농협은행은 전국에 1150여개 점포가 있다. 수익보다는 지역 접근성 차원에서 전국에 산재해 있다. 5000만 인구 중 4000만명이 농협 계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농협은행에 서울과 수도권은 취약 지역이다.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진검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이 행장은 2015∼2016년 경기도와 서울 지역 영업본부장을 맡아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이어 부행장 승진을 건너뛰고 곧바로 농협상호금융 대표로 영전했다. 올해 1월엔 상호금융 대표 임기를 1년 남겨둔 상태에서 또다시 농협은행장 직에 올랐다. 현재 은행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김태영 옛 농협신용부문 대표(현 은행장) 이래 처음 나온 파격 인사다.
-영업 비법이 뭔가. 디테일을 말해 달라.
“지점장일 때고 김영란법 이전이다. 명절엔 VIP 고객을 관리하기 위해 소고기 선물을 보냈다. 백화점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넘기면 편한데 그러지 않았다. 먼저 고객이 좋아하는 부위를 파악했다. 하나로마트 매장에 내려가서 치맛살 부챗살 등 선호 부위를 담아 포장했다. 이게 단가가 더 싸다. 그리고 고객을 꼭 직접 찾아가 건넸다. VIP들은 택배로 보내오는 걸 싫어한다. 다른 은행에서 보내온 소고기와 차이 나게 마련이다. 생일날 난 화분을 보낼 때는 화원에서 흙을 넣는 것부터 챙겼다. 간혹 흙 속에 스티로폼을 섞는 데가 있다. 그럼 한 달도 못가 시들어버린다. 굵은 자갈과 부드러운 흙을 섞어서 선물하면 두세 달은 간다. 남들이 보내온 것보다 쌩쌩하게 버티면 그 손님은 우리에게 온다. 재래시장 주변에선 A4 용지 2장 분량으로 시장 소식지를 만들었다. 상인들은 바빠서 다른 가게에 어떤 게 있는지 잘 모르는데, 소식지를 은행 창구에 두고 읽기를 권하며 인연을 맺었다. 첫눈 오는 날엔 여성 고객들을 모시고 근교 왕릉 소나무 아래로 드라이빙을 모신 적도 있다.”
이 행장은 취임 100일을 맞이해 올해 수익 20% 끌어올리기 드라이브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은행은 핀테크 업체가 마음껏 이용하도록 오픈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공개하는 등 디지털 금융의 마중물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 행장은 “디지털 쪽에서 반걸음 앞서는 전략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李 은행장은 1960년 경기도 포천 출생이다. 위로 누나가 둘,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면서기가 되길 바랐던 어머니 몰래 농협대학 원서를 받아와 집을 떠났다. 포천농협 시절 딸기농사, 비료포대 나르기도 해봤다. 농협중앙회 입사 이후에 줄곧 금융인의 길을 걸었다. 2012년 농협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 이후 탄생한 농협은행의 제4대 은행장이다.
우성규 홍석호 기자 mainport@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파마머리 28년… 동네 미용실은 영업 정보의 보고”
입력 2018-03-3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