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聖畵)는 성경을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자료입니다. 그 자체를 신성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에서 만난 조성암 암브로시오스(58) 한국 정교회 대주교는 “복음의 오묘한 세계로 인도하는 부교재가 바로 성화”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성화의 역할에 이처럼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은 정교회가 성화를 숭배한다는 일각의 비판 때문이다.
그는 “정교회에서는 아무나 성화를 그리지 못하고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묘사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면서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은 성화에 개입될 수 없고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가감 없이 화폭에 옮기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평생 성화를 연구해 온 학자이기도 하다. 그리스 출신인 그는 아테네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교회사와 예술사를 전공하며 성화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성화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곳은 미국이지만 그에게 영감을 준 건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성 카타리나수도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인 ‘시나이 사본’이 있는 이곳은 보물급 성화 2000여점이 보관돼 있는 세계 제일의 성화 박물관이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1988년부터 2년 동안 이곳 미술관의 연구 사제로 일하면서 수많은 성화를 보고 성경을 묵상했다. 그때부터 그가 가진 바람은 성화의 대중화였다.
“2000여년 전 교회를 상상해 보세요. 글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교인들에게 성경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선 성화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죠. 이런 전통이 이어져 지금도 정교회에선 ‘성경을 통해 복음을 읽고 성화를 통해 본다’는 말을 합니다.”
그는 현대에도 성화의 역할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주 사진을 보고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마음을 예로 들었다. “할머니가 사진을 보면서 먼 곳에 있는 손주들을 떠올리고 추억에 젖습니다. 성화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리움, 사랑, 신앙의 열정을 일깨우는 것이죠.”
성화의 대중화를 꿈꿔온 학자답게 그는 최근 ‘비잔틴 성화 영성 예술’(정교회출판사)이라는 성화 입문서를 펴냈다. 2005년 출판했던 책에 40여개의 성화와 해설을 덧붙여 펴낸 증보판이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인터뷰 말미에 “성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 와보세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성화의 진수를 느끼기 위해선 성 카트리나 수도원엘 가야 합니다. 최고죠. 하지만 너무 멀어요. 문을 열지 않는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성 니콜라스 성당은 서울에 있습니다. 성경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성화도 가득합니다. 가족과 함께 오세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성화는 성경 이해를 돕는 자료일 뿐 그 자체를 신성시하는 건 위험”
입력 2018-03-30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