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반추, 회개, 경신의 사순절

입력 2018-03-30 00:01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십자가와 부활로 절정을 이룬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간 금식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역사적 교회는 부활절 이전 주일을 뺀 40일간(사순절)을 구별해 지키고 있다. 이 기간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제도 종교의 빗나간 행보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도를 회복하는 ‘반추, 회개, 경신(reflection, repentance, renewal)’의 전통을 이어왔다.

고난주간을 맞은 우리의 자세와 다짐은 무엇이어야 할까. 고난당하시는 주님을 불쌍히 여기고 슬퍼해야 할까. 주께서 우리의 동정심을 바라실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며 슬피 울던 여인들에게 주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말씀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십자가의 도를 무당 종교로 변질시켜 후대에 전승하는 모든 시대의 제도 교회를 향한 일침이다. 그래서 바울도 빌립보교회를 향해 운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18∼20)

역사학자인 알렌 크라이더는 그의 책 ‘회심의 변질’에서 초대교회는 회심을 개종, 즉 종교 갈아타기가 아니라 세 가지 근본적 변화로 이해했다고 말한다. ‘3B’로 정리한 회심의 3요소는 소속(belonging) 믿음(belief), 그리고 행동(behavior)의 변화였다. 위에 인용한 빌립보서 말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다른 정체성, 곧 하늘에 속한(belonging) 시민들임을 강조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이생에서 특혜를 누리는 종교, 즉 ‘땅의 일’에 관한 번영의 종교가 아니란 말이다.

변화된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변화된 가치관을 유발한다. 믿음(belief)이란 특정 교리의 인식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에 부합한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혁이다. 바울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주문하는 이유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는 회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이아’를 풀어쓴 말이다. 문자적으로는 ‘마음을 바꾸다’라는 뜻이다. 회심은 인간 상식에 부응하는 무당 종교를 버리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곧 예수가 구현한 십자가의 도를 붙잡는 급진적인 관점 전환이다.

변화된 정체성에 따른 회심한 믿음은 우리의 삶과 행동(behavior)을 현저히 바꾼다. 예수보다 앞서 와서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한 세례 요한이 당시 종교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8∼9)고 책망한 것은 행위에 따른 구원을 주장한 게 아니라 진정한 회심의 증거(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한 것이다.

우리는 역설적 십자가 복음으로 회심했는가. 우리 가치관과 삶은 십자가의 도를 드러내는가. 개혁자들이 회복한 복음이 바로 십자가의 도였다. 루터의 95개 조항 선언으로 촉발된 개혁운동은 개혁자들과 로마교회 신학자들 사이에 일련의 신학논쟁을 유발했다. 첫 사례가 1518년 3월 독일에서 벌어진 하이델베르크 신학 논쟁이었다. 이 논쟁에서 로마교회는 ‘영광의 신학’을 내세웠으나 개혁자들은 ‘십자가 신학’이 복음의 본질임을 주장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막 8:34, 마 16:24).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맞은 현대교회는 십자가 복음을 묵상하고 회복해야 한다. 십자가와 무관해 보이는 현대 교회의 흉한 민낯 앞에서, 4년 전 고난주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회자되던 “배를 버린 선장, 십자가를 버린 교회”라는 비판이 유독 가슴을 후벼 파는 요즘이다.

정민영 (전 성경번역선교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