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탐욕, 그리고 거짓말

입력 2018-03-30 05:00

하버드대 학생들을 상대로 두 가지의 상상 세계에서 하나를 고르라는 실험을 했다. 하나는 연평균 소득이 2만5000달러인데 자기들은 5만 달러를 버는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연평균 소득이 20만 달러인데 자기들은 10만 달러를 버는 세상이었다. 어떤 세상을 고를까. 대다수가 전자를 선택했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의 저자 스키델스키 부자는 심리 실험을 해보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절대적 소득이 아니라 상대적 소득이라고 말한다.

전직 대통령의 반복되는 흑역사를 보면서 드는 의문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으면서 누릴 것을 다 누린 사람들이 무엇이 부족해 돈을 받을까 하는 것이다. 갑부가 되려고 대통령직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기업들로부터 수천억원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감옥에 갔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 수사 당시 기아그룹 김선홍 회장은 “준비해간 30억원이 든 가방을 줬더니 돈 봉투만 꺼내고 가방은 돌려주더라”며 대통령의 돈 욕심에 혀를 내둘렀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아들들이 뇌물을 받아 감옥에 갔다. 형이 뇌물을 받아 감옥에 갔고,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달러와 명품 시계를 받은 사건이 불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불행한 역사를 보고도 왜 돈을 받는 것일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더구나 수백억원대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청백리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전여옥의 말처럼 국민들은 이 전 대통령은 부자이기 때문에 뇌물로 감옥 가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 그도 110억원대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 그것도 대기업 삼성은 물론 중소기업이나 국회의원, 심지어 스님에게까지 돈을 받았다. 대학 후배인 우리금융지주 회장한테는 매관매직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이라고 한다.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검찰이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나지 말았어야 한다.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며 청계재단을 설립한 것은 결국 ‘선거용 쇼’였나. 30대 이명박 사장을 곁에서 지켜봤던 현대그룹 전 임원의 20년 전 말을 기억해보면 답이 나온다. 성정의 문제다. 노점상 소년에서 35세에 CEO가 된 그는 그룹의 비자금 창구 역할을 하며 하청업체로부터 돈을 받아 챙기던 ‘건설사 사장’ 행태를 못 버린 거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부터 정치인과 기업인, 일개 범인(凡人)에 이르기까지 너무 탐욕적이다. 물욕이 우리가 숭고하다고 믿어왔던 도덕적 가치들을 삼키는 세상이다. 강남 로또 아파트 청약에 몰린 ‘금수저’들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욕망을 보여준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공급이 강남 부자들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됐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경제적 활동은 본성인 이기심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하지만 극단적 이기주의와 물질주의로 치닫는 세상의 끝은 파국이다.

권력을 위해 거짓말도 밥 먹듯 하는 세상이다. 자신을 향한 뇌물·횡령 의혹을 ‘새빨간 거짓말’이라더니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성추행을 하고도 ‘완벽한 소설’이라거나 ‘음모론’을 제기하며 오히려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간 정봉주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세월호 7시간을 조작한 박근혜 청와대의 집단 사기극에는 말문이 막힌다. 우리 사회에 정직이나 도덕, 양심이 존재하는지 회의가 든다. 선(善)이나 공동체 의식이 고갈된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의 저주만 있을 뿐이다.

돈이 많고 적음의 차이도 아니다. 평생 노점상을 하며 모은 돈을 사회에 기부하는 무명의 의인들이나 인류를 위해 신약 개발에 거액을 투자하는 빌 게이츠, 지구의 종말에 대비해 인간을 구하겠다며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런 머스크 등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우리가 잊고 사는 그런 가치들이다. 이 글은 헛되이 세상적 물질과 권력을 갈망하는 나 스스로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