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들, 푸틴처럼 도둑질만 꿈꿔” 참혹한 희생에 국민 분노 폭발
대외 갈등 터져도 사고에 관심 집중… 놀란 푸틴, 즉각 현장 달려가
연방수사위, 방화 가능성 제기
러시아 시베리아의 케메로보 중앙광장에 27일(현지시간) 수천명의 군중이 모였다. “사퇴하라”거나 “진실을 밝히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지난 25일 발생한 현지 쇼핑몰 화재로 자녀와 아내, 남편, 이웃이 죽어나가는 것을 목도한 터였다. 시위 현장을 방문한 케메로보주 부지사가 희생자 수를 64명이라고 말하자 한 남성이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외쳤다. 집회 참석자 중 발표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불과 몇 ㎞ 떨어진 장소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공무원들을 질책하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끝내 광장으로 오지 못했다. TV뉴스 역시 광장을 외면한 채 대통령의 얼굴만 비췄다.
푸틴 대통령이 케메로보 쇼핑몰 화재 사건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푸틴 정권 아래 만연한 부패가 화재의 근본 원인이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어서다. 그간 국내에서 시끄러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보도를 통제하거나 서방과 각을 세워 내부결속을 강화하는 식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지만 이번에는 예전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28일을 ‘국민 추모의 날’로 선포한 푸틴 대통령은 수도 모스크바에서 약 3200㎞ 떨어진 케메로보를 직접 방문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더불어 관리들의 범죄적 태만과 나태함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질책했다.
푸틴 대통령이 유독 이번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여론이 심상치 않아서다. 최근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 암살기도 사건 뒤 서방 국가들이 잇따라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대외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여론의 관심은 이번 사고에 더 쏠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금까지 러시아 정부는 외교 갈등으로 국내 문제를 덮어왔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푸틴 대통령이 집권을 연장한 이래 처음 경험하는 내부 불협화음”이라고 평가했다.
SNS 등에서는 참사 희생자가 300∼500명에 이른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잠긴 문을 애타게 두드리다 숨진 아이들의 모습과 부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등 사고 당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대중의 분노가 증폭되는 양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해당 쇼핑몰이 애초 화재 안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부패한 관리들 덕에 영업 허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케메로보 구역 법원은 이날 화재가 난 쇼핑몰 대표 나데즈다 수드데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고 진상 조사에 나선 연방수사위원회는 방화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날 수도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서도 정부를 향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푸시킨 광장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서는 “부패가 희생자들을 죽였다” “(사건을 축소 보도하는) 방송은 부끄러운 줄 알라” “침묵은 곧 죽음이다” 등의 정치적인 발언이 넘쳤다. 화재로 아내와 자녀 3명, 누이를 잃은 시민 이고르 보스트리코프는 SNS에서 “모든 관료들은 푸틴처럼 도둑질을 꿈꾸고 모든 국가기관은 사람들을 쓰레기 취급한다”면서 “조사관들은 희생양을 찾은 뒤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푸틴 덮친 ‘쇼핑몰 참사’ 러시아판 ‘세월호’ 되나
입력 2018-03-29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