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문화, 교회가 함께] ‘자살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생명의 손’을

입력 2018-03-29 00:00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제 손을 잡으세요'라는 자살예방 문구가 쓰여 있다.뉴시스
한 해 평균 1만3000여명. 1시간30분에 한 명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나라(2016년 기준).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자살 예방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생명 존중에 앞장서 온 한국교회 역할이 커지고 있다. 자살 문제의 해법과 교회의 역할을 3차례에 걸쳐 짚어보고, 향후 교계와의 협력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어머니, 예삐(애완견) 밥 주러 집에 먼저 가 볼게요.”

2009년 8월 28일, A씨가 첫째 딸에게 들었던 마지막 말이다. 평소와 달리 “엄마” 대신 “어머니”라고 불렀던 게 마음에 걸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날 딸은 18층 건물에서 떨어진 채 발견됐다. 유서엔 ‘미안해. 죽음만이 살길이야’란 쓸쓸한 고백이 남아 있었다. 불행은 이어졌다. 엿새 뒤 “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등교한 둘째 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A씨는 “시간이 10년 전으로 멈춰진 것 같다”며 “지옥 같은 하루가 지나면 내일 맞을 지옥이 두렵기만 하다”고 했다.

대한민국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25.6명(2016년 기준). OECD 평균 12.1명의 배가 넘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매년 8만명, 지난 10년간 최소 70만명의 자살 유가족이 발생했다. 자살은 시도한 사람은 물론 남겨진 가족에게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남긴다. 자살 유가족이 곧 자살 고위험군에 편입되는 이유다.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자살 유가족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대인관계 단절 등을 동시에 감당하게 된다”며 “일반인에 비해 자살 위험은 8.3배,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7배 높다”고 설명했다.

자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정부와 국회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2022년까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17명을 목표로 범정부 차원의 예방계획을 추진키로 했다. 복지부는 자살예방정책과 신설, 자살동향 감시체계 구축, 자살 유가족 사후관리 등을 담은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내놨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에 따라 생명 사랑·존중을 강조해 온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감지된다. 전명숙 자살예방정책과장은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살을 예방하고 자살 유가족을 회복시키는 과제는 의료적 치료만으론 불가능하다”며 “이들을 보호하고 보듬는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이 교회”라고 강조했다.

교계에서는 자살예방 및 자살 유가족 지원 활동이 확산되고 있다. 2010년부터 활동한 라이프호프(대표 조성돈 교수)가 대표적이다. 라이프호프는 지역별 거점교회와 협력해 생명존중문화 확산을 위한 걷기대회, 자살예방 전문가 교육,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인 마음이음예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산 거룩한빛광성교회(정성진 목사) 안양감리교회(임용택 목사)는 자체적으로 자살예방 기관을 운영하거나 지역 내 유관기관과 협력해 자살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생명존중의 의미 확산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경찰청이 발표한 자살원인 추이(2013∼2015년)에 따르면 정신과적 문제로 자살한 비율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그 비율은 매년 높아졌다. 자살 유가족들이 겪는 고통의 대다수도 정신적인 부분에 집중됐다. 전 과장은 “관계지향적인 집단 특성을 가진 교회가 대화를 통한 성도 간 교제, 소모임 등을 활용해 상처 보듬기에 적극 나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7일 출범한 국회 자살예방포럼(공동대표 더불어민주당 원혜영·자유한국당 김용태·바른미래당 주승용 의원)과의 협력 가능성도 주목된다. 포럼 간사를 맡고 있는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해 기독교계가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온 만큼 토론회를 통한 소통, 캠페인 진행 등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