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려고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요.”
28일 오후 4시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가진리 한 산골. 유회분(60·여)씨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린 자신의 집을 보며 깊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5년 전 이곳에 정착한 유씨는 “이번 불이 귀촌의 꿈을 모두 앗아갔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느냐”며 “불과 6시간 전 만해도 귀촌의 꿈을 이루게 해줬던 멋진 우리 집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침에 이를 닦는데 화장실 창문 틈 사이로 검은 재와 연기가 새어들어 왔다”며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며 ‘당장 대피해야 한다’고 소리쳐 칫솔 하나만 들고 맨 몸으로 집을 뛰쳐나왔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오전 6시22분쯤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나 축구장 56배 크기에 해당하는 40㏊가 넘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탑동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가진·공현리 등 바닷가 마을로 번져 주택 5채와 사무실 2동, 창고 10동을 집어 삼켰다. 주택 소실로 6가구 7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불은 오후 5시30분에 큰 불길이 잡혔고 발생 16시간 만인 오후 10시쯤 잔불까지 진화됐다. 산림당국은 재발화에 대비해 진화헬기 6대를 산불 지역 인근에 배치했다. 또 뒷불 감시 인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이날 산불 현장에는 헬기 40대가 끊임없이 물을 퍼 나르며 진화에 안간힘을 썼다. 지상에서는 고성군 공무원과 산림청 등 2600여명이 투입돼 진화 작업을 벌였다. 소방당국은 인근 시·도에서 진화차량과 물탱크까지 지원받아 산불이 마을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육군 22사단 직할 공병부대는 부대 인근까지 산불이 확산되자 탄약과 유류 등 전투물자를 안전지대로 옮겼다.
고성군은 오전 6시43분쯤 군민들에게 긴급재난 문자를 보냈다. 이어 7시54분쯤 가진리 240가구 445명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주민 김정자(72·여)씨는 “아침에 집 밖에 나왔는데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연기가 가득 차있었다”며 “바람을 타고 날아온 불들이 마을 곳곳에 떨어지고 마을 주민들이 이 불을 끄려고 애썼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공현진초교는 산불로 인해 휴업에 들어갔고 간성초교와 고성중·고교, 대진중·고교는 2∼3교시를 마친 뒤 학생들을 하교시켰다. 연기 때문에 도로 통행이 통제되기도 했다. 경찰은 도로가 연기로 뒤덮여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7번 국도 간성∼공현진 구간과 해안도로를 오후 2시까지 통제했다.
고성=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최대 피해 죽왕면 가진리 르포] 고성 산불, 40㏊ 태우고 16시간 만에 불길 잡혀
입력 2018-03-28 18:24 수정 2018-03-28 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