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피해 죽왕면 가진리 르포] 고성 산불, 40㏊ 태우고 16시간 만에 불길 잡혀

입력 2018-03-28 18:24 수정 2018-03-28 23:59
28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의 야산 중턱에 있던 재활용품 더미에 산불이 옮겨 붙어 맹렬한 기세로 타고 있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멀리 소방헬기가 진화작업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날 오전 발생한 산불은 건조주의보 속에 강풍을 타고 번져 소방당국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성=최현규 기자
산불로 화상을 입은 개 한 마리가 소방차 뒤로 대피한 모습. 고성=최현규 기자
“남편과 함께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려고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요.”

28일 오후 4시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가진리 한 산골. 유회분(60·여)씨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린 자신의 집을 보며 깊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5년 전 이곳에 정착한 유씨는 “이번 불이 귀촌의 꿈을 모두 앗아갔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느냐”며 “불과 6시간 전 만해도 귀촌의 꿈을 이루게 해줬던 멋진 우리 집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침에 이를 닦는데 화장실 창문 틈 사이로 검은 재와 연기가 새어들어 왔다”며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며 ‘당장 대피해야 한다’고 소리쳐 칫솔 하나만 들고 맨 몸으로 집을 뛰쳐나왔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오전 6시22분쯤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나 축구장 56배 크기에 해당하는 40㏊가 넘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탑동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가진·공현리 등 바닷가 마을로 번져 주택 5채와 사무실 2동, 창고 10동을 집어 삼켰다. 주택 소실로 6가구 7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불은 오후 5시30분에 큰 불길이 잡혔고 발생 16시간 만인 오후 10시쯤 잔불까지 진화됐다. 산림당국은 재발화에 대비해 진화헬기 6대를 산불 지역 인근에 배치했다. 또 뒷불 감시 인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이날 산불 현장에는 헬기 40대가 끊임없이 물을 퍼 나르며 진화에 안간힘을 썼다. 지상에서는 고성군 공무원과 산림청 등 2600여명이 투입돼 진화 작업을 벌였다. 소방당국은 인근 시·도에서 진화차량과 물탱크까지 지원받아 산불이 마을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육군 22사단 직할 공병부대는 부대 인근까지 산불이 확산되자 탄약과 유류 등 전투물자를 안전지대로 옮겼다.

고성군은 오전 6시43분쯤 군민들에게 긴급재난 문자를 보냈다. 이어 7시54분쯤 가진리 240가구 445명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주민 김정자(72·여)씨는 “아침에 집 밖에 나왔는데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연기가 가득 차있었다”며 “바람을 타고 날아온 불들이 마을 곳곳에 떨어지고 마을 주민들이 이 불을 끄려고 애썼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공현진초교는 산불로 인해 휴업에 들어갔고 간성초교와 고성중·고교, 대진중·고교는 2∼3교시를 마친 뒤 학생들을 하교시켰다. 연기 때문에 도로 통행이 통제되기도 했다. 경찰은 도로가 연기로 뒤덮여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7번 국도 간성∼공현진 구간과 해안도로를 오후 2시까지 통제했다.

고성=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