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예상 넘는 광폭 행보… 연쇄 회담으로 화려한 성공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여동생·아내 자주 등장시켜
권력 장악 자신감 붙은 듯
김정은(사진)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 7년 만에 외교 무대에 데뷔했다. 김정은은 2012년 집권 이후 지금까지 북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처럼 ‘은둔의 지도자’가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1월부터 파격적인 광폭행보를 시작했다. 주변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문재인 대통령 평양 초청을 제안했고, 2월에는 전격적으로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서울로 보냈다. 이어 대북 특사단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했고, 비핵화 협상을 고리로 북·미 정상회담을 이뤄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아버지 김정일은 물론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도 이루지 못한 일이다.
또한 중국과의 물밑 접촉을 통해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중국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다음 달에는 판문점에서 우리 측 통일의집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비록 판문점이지만 북한 지도자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 측 지역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파격으로 평가된다. 김정은은 이러한 파격 행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임을 인정받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상국가는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벗어난 국가이고, 이는 곧 국제사회의 지원과 북한 경제 개발로 이어지는 구상이다. 특히 김일성·김정일과는 달리 김여정과 부인 이설주 등 가족을 외부에 자주 공개하는 것도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이 외교 무대에 나선 건 내부 권력 장악에 상당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정일 사망 이후 한동안 불안정했던 통치체계를 정리함으로써 밖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긴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3년 만인 2015년 초 러시아를 방문해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려 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국제무대 데뷔여서 관심을 모았으나 행사 열흘 전 취소 통보를 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북한 내부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만 설명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외교 대신 권력 장악에 집중했다. 고위 간부를 무더기로 처형해 국제사회에 ‘잔혹한 지도자’로 악명을 떨쳤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인 2012년 7월 이영호 북한군 총참모장을 숙청한 데 이어 2013년 12월에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처형했다. 2015년 4월에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다. 간부 처형과 숙청은 김일성·김정일 시절보다도 훨씬 잔혹하고 광범위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권력 장악을 완료한 이후 대외 행보에 나서는 것은 김씨 일가의 통치 패턴이다. 김정일도 북한 최고지도자에 오른 지 6년 만에 외교 행보를 가졌다.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한동안 공식적으로 권력 승계를 하지 않고 ‘유훈 통치’를 했다. 김정일은 1997년 10월 노동당 수장인 당 총비서 취임에 이어 1998년 9월 권력체계를 국방위원장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유훈 통치를 끝마쳤다. 김정일은 2년 뒤인 2000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러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다만 김정일은 아버지와 달리 활동 범위가 중국과 러시아로 제한적이었다. 방문 횟수도 중국 8번, 러시아 2번으로 총 10번뿐이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김정은, ‘은둔’ 이미지 벗고 국제 무대 파격 데뷔
입력 2018-03-28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