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학스캔들’ 꼬리 자르기… 前관료 “아베 지시 없었다”

입력 2018-03-28 05:05
재무성 문서 조작 사건과 관련해 담당 국장이었던 사가와 노부히사 전 국세청장이 27일 국회에 증인으로 소환된 후 답변에 앞서 손을 들어 선서하고 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 등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면서도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 중이라며 증언을 거부했다. AP뉴시스

“책임, 오로지 나에게” 국회 증언
총리·재무상 보고한 사실도 부인… 핵심 사안엔 “수사 중” 답변 거부
야당 “아키에 여사를 소환하라” 국회 밖서 “아베 반대” 집회 열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을 궁지로 몰아넣은 일본 재무성 문서 조작 사건의 일차적 책임자인 사가와 노부히사 전 국세청장이 27일 국회에 증인으로 불려나왔지만 의혹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문서 조작 당시 재무성 이재국장이었던 사가와 전 청장은 “아베 총리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의 지시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했다. 앞서 아소 부총리가 “최종 책임자는 사가와”라고 꼬리를 잘랐던 대로 사가와는 잘려진 꼬리 역할에 충실했다.

사가와가 연루된 문서 조작은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에 사는 과정에 당시 이사장과 아베 총리 부부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모리토모 스캔들’의 연장선이다. 재무성 이재국이 국유지 매각 결재문서에서 모리토모학원에 특혜가 주어졌음을 시사하는 문구와 아베 총리 부부 관련 기술을 삭제한 뒤 국회에 제출했던 사실이 나중에 발각돼 문제가 커졌다.

이날 참의원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증인으로 소환된 사가와는 “재무성 관방부서나 총리 관저에 보고하거나 그쪽의 지시를 받지 않고 이재국 안에서 대응했다”며 “당시 담당국장으로서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 부부나 총리 비서관, 아소 부총리 등의 지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고 답했다.

모든 책임을 자신이 떠안겠다는 뜻을 나타냈지만 문서 조작의 이유와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선 “내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형사소추의 우려가 있으므로 답변을 피하겠다”며 철저히 함구했다. 증언 거부가 이어지자 일부 야당 의원이 “이래서는 증인 소환의 의미가 없다”고 소리쳐 질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아베 총리가 “내 아내가 (의혹에) 관련됐다면 총리도 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발언한 게 문서 조작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사가와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문서 조작은 윗선의 직접적인 지시로 이뤄지지 않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심중을 헤아려 행동하는 ‘손타쿠’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쓰지모토 기요미 국회대책위원장은 “사가와 자신이 ‘도마뱀의 꼬리’가 돼서 이재국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같은 당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은 “의혹이 더 커졌으니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의 증인 소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 주변에선 수백명이 아베 내각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편 수감 중인 가고이케 야스노리 전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은 26일 야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베 총리를 향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일갈했다. 국유지 특혜 매각에 관여한 바 없다는 아베 총리의 주장을 거짓말로 규정한 것이다. 가고이케는 자신이 ‘국책구속(국가의 계획적인 구속)’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