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장악한 건설인력시장] 인력시장 80%가 中 한족… 건설경기 침체에 불법 횡행

입력 2018-03-28 05:01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이 26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력시장을 찾아 긴 줄을 선 채 대기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글 싣는 순서
<상> 건설현장 불법 무풍지대
<하> ‘남구로역 인력시장’ 르포

이른 새벽부터 1000여명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대기
오전 5시 오야지들 나타나 200명도 채 안되게 데려가
허용된 업종 따로 있지만 마구잡이로 일자리 알선
한국인 노동자 “한족들이 다 해먹으니 자리가 없다”


26일 새벽, 한산한 도로를 달리던 택시가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삼거리가 가까워지자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택시 기사는 “여기는 새벽에 오면 정신이 없다”며 “좀 일찍 내려줄 수 없겠느냐”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택시에서 내려 남구로역까지 걸어 도착한 시각은 오전 4시30분. 인도에는 짙은 색 작업복 잠바를 입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도로가로 내려와 승합차와 얽혀 있었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이었다.

거리는 건설 현장 일자리를 구하려는 건장한 사내들로 가득했지만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쪽에선 커피와 차를 나눠주는 천막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코밑까지 검은색 넥워머를 올려 입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거리를 어둡게 만들었다.

둥굴레차를 끓여 종이컵에 담아 나눠주는 박모(64)씨는 5년째 새벽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하루에 큰 주전자 10통의 물을 끓이고 한 박스 반의 종이컵을 쓰는데 그게 1500개 정도”라며 “하루에 이곳에 모이는 인원이 1000명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삼거리에도 구역이 있었다. 남구로역 3번 출구와 2번 출구 사이 KEB하나은행 구로동지점 건물 앞에 모인 이들은 중국인들이다. 조선족과 한족들이 가득 서 있어 900명은 넘을 것 같았다. 이곳에선 온통 중국말밖에 들리지 않았다. 한글 간판이 어색해 보일 정도였다. 이 중 간혹 한국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쓰는 사람은 조선족이었다. 한 조선족 노동자는 “이 구역에 있는 사람의 80%는 한족”이라고 말했다.

대각선 맞은편 부동산사무소 앞 인도에는 한국인 20∼30명이 모여 있었다. 서로 얼굴을 아는 듯 담배를 피우다 말고 근황을 묻다 한숨을 쉬곤 했다. “일 있어요?” “없지.” 50대의 한국인 노동자 A씨는 “일 없기가 올해는 특히 더한데 그나마 중국인들이 다 해먹으니 우리는 자리가 없다”고 했다.

오전 5시쯤 스타렉스 승합차가 들어서는가 싶더니 잇따라 승합차들이 한두대씩 삼거리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는 이들은 ‘오야지’라고 불리는 인력공급업자들이었다. 오야지는 사내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일할 사람.”

오야지도 십중팔구는 조선족이었다. 한국인 쪽은 눈길도 주지 않고 중국인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람을 찾았다. “목수(일) 가는데 할 수 있겠나.” “일은 얼마나 했나.” “열심히 할 수 있어. 8만원 줄 테니 갈래.” “몇 명이나 있어.”

외국인의 경우 취업용 비자가 있어도 비자에서 허용한 업종에서만 일을 할 수 있지만 오야지에겐 관심 밖이었다. 말과 눈빛으로 대략 흥정이 되면 8∼9명을 모아 승합차에 태우고 떠났다.

지난해 12월부터 남구로역에서 인부를 모집하고 있다는 한국인 오야지 황모(63)씨는 “중국인 중에서도 한족 노동자들은 임금이 매우 낮기 때문에 오야지들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일을 시키려 하는 경우가 잦다”며 “교육도 잘 돼 있지 않은 이들을 마구잡이로 데려가다 보니 안전사고도 생긴다”고 말했다. 황씨는 “중국인들과 한국인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돼 사소한 다툼도 종종 생긴다”고 했다.

조선족 출신 목수 박모(57)씨는 “4시간이나 8시간씩 안전교육을 받고 번거로운 절차를 다 통과해 합법적으로 일을 구하러 와도 어차피 한족 중국인들이 일을 독차지한다”고 한탄했다. 박씨는 “25일 동안 일을 구하러 나왔는데 4일도 채 못 나갔다”며 “못 살겠다”고 했다.

인력시장이 마감할 무렵인 오전 6시가 지났지만 거리에 모인 1000여명 중 실제로 일을 구해서 간 사람은 2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건설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돼 일자리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구한 200명은 대부분 한족 출신 중국인이었다.

한국인 구역에 남아 있던 10여명은 인상이 구겨졌다. “시X, 오늘도 공쳤네.” 한 남자가 화를 내면서 자리를 떴다. 한국인 일용직 노동자 이모(70)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서울에서 일 잡기는 글렀고 내일은 포항으로 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경루 심우삼 기자 roo@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