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 자백했지만 묵살… 18년 걸려서야 ‘단죄’

입력 2018-03-28 05:05
전주지검 군산지청 수사관들이 2016년 11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김모씨를 경기도 용인에서 체포해 압송하고 있다. 뉴시스

당시 16세 목격자 범인 지목, 고문에 거짓 자백하자 기소 10년형 받고 만기 출소
2003년 진범 체포됐지만 檢 “범인 잡혀”… 무혐의 처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 김모(37)씨에게 징역 15년형이 확정됐다. 27일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2000년 벌어진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한 단죄가 18년 만에 내려졌다.

지난해 2월 개봉한 영화 ‘재심’의 소재가 됐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소 시스템 오류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같은 해 8월 검찰총장 최초로 이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과오(過誤)를 인정했다. 법원도 재심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진범으로 판결했던 책임을 벗긴 어렵다.

택시기사 A씨(사망 당시 42세)는 2000년 8월 10일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에 주차된 자신의 택시 운전석에서 가슴 부위를 칼로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검찰은 당시 16세였던 목격자 최모(34)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고문·강압 수사를 받은 최씨는 거짓 자백을 했고 20일 만에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일사천리로 징역 10년 형을 확정했다.

사건 발생 3년 뒤, 군산 일대 택시강도 사건을 수사하던 군산경찰서 황상만 강력반장은 “익산 택시강도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접했다. 이미 최씨가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상태였다. 황 반장은 ‘한번 얘기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김씨의 친구 임모씨를 찾아갔다. 정작 임씨는 김씨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술술 털어놨다. 긴급 체포된 김씨 역시 “많이 후회된다. 내(나) 대신 잡혀간 사람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자백했다.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의 진범이 잡힌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은폐를 시도했다. 황 반장 등이 “김씨가 진범”이라며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묵살했다. 이미 범인이 잡혔다는 이유에서였다. 체포 상태에서 풀려난 김씨는 “심신미약 상태에서 허위자백을 했다”며 병원에 입원해 버렸다. 2006년 검찰에서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이름을 바꾼 뒤 회사원으로 살았다. 황 반장은 지구대를 전전하다 2014년 정년퇴직했다.

최씨는 남의 죗값을 대신 치른 뒤 2010년 출소했다. 이후 박준영 변호사를 통해 2013년 광주고법에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5년 7월 ‘2000년 8월 8일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이른바 태완이법이 시행됐고, 김씨는 뒤늦게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도 김씨에게 징역 15년의 유죄를 확정했다.

현재 최씨는 2003년 영장신청을 기각한 담당 검사와 2006년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검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아직 현직에 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인권침해·검찰권 남용 의혹이 있는 12개 사건 중 하나로 선정해 재조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