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발의한 개헌안에는 예산법률주의가 포함됐다. 단순히 예산을 법률 형태로 편성한다는 의미를 넘어 재정운용 중심을 정부에서 국회로 이양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예산법률주의는 말 그대로 예산안을 법률 형태로 편성·제정해 법률적인 효력을 부여하는 제도다. 지금은 예산이 단순히 명칭과 금액만을 열거하는 통계표와 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데, 예산법률주의 아래서는 법률 용어로 서술된 법조문 형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출용도나 목적, 사업 내용과 제약, 권한, 책임 등을 더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서술할 수 있다. 그만큼 예산이 본래 취지에 맞게 집행되고 있는지 사후 관리하기 용이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예산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 과실 등은 법률 위반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책임도 강화된다.
정부에 쏠려 있는 예산과 관련된 권한의 많은 부분은 국회로 넘어온다. 지금은 정부가 예산편성권을 갖고, 국회는 심의확정권만 갖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와 정부가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지점도 있어 예산법률주의가 개헌안대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대표적인 게 정부의 증액동의권이다. 현재 국회는 심사하는 과정에서 정부 동의 없이는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집어넣을 수 없다. 개헌안은 증액동의권이라는 정부의 막강한 권한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 ‘반쪽짜리’ 예산법률주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증액동의권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 개헌안에 ‘대통령 거부권’을 두지 않는 쪽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개헌안 제58조는 ‘국회가 예산안을 심의해 예산법률로 확정한다’고 명시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7일 “여기서 ‘확정한다’라는 문구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국회 의결만으로 예산안이 확정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예산법률주의 도입에 따라 우려되는 점들도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정책처는 “예산위반이 곧 법률위반이 되기 때문에 정부에 의해 편법적인 예산외 예산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국회의 전문성 강화가 뒷받침돼야 하고, 예산 관련 국회 상임위를 상시 운영하는 등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은 대부분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국가별로 운영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매년 ‘대통령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한다. 의회는 정부안에 관계없이 예산 삭감·증액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도 인정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정부가 예산법률안 제출권을 행사한다. 의회는 정부 동의 없이 지출증액 등을 결정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총리의 예산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文개헌안 ‘예산법률주의’… 재정운용 국회에 넘기는 획기적 변화
입력 2018-03-28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