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전성인] 관치·정치·불법 금융의 청산

입력 2018-03-28 05:00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하나은행 채용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 때문에 사직한 지도 벌써 보름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 이 사건의 또 다른 관련 인사인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3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채용비리와 관련한 진상 규명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김 회장의 완연한 판정승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첫째, 진상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감독기구의 수장을 경질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관치금융’이다. 최 금감원장의 경질 사유로 슬금슬금 흘러나오는 논거는 ‘젊은 층이 채용비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정권이 채용비리에 연루되면 지방선거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오판이다. 감독기구의 수장은 선거의 유불리를 따져 맘대로 경질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상황을 바꾸어서 ‘총선 앞두고 금리 인상한다고 한국은행 총재 경질하는 처사’를 가상적으로 떠올려 보면 된다. 이것은 문재인정부가 잘못한 것이다.

둘째, 하나금융그룹의 ‘정치금융’은 그 뿌리가 넓고 깊다. 서울은행 인수를 둘러싸고 하나은행과 론스타가 맞붙었던 2002년 여름, 하나은행의 조건이 론스타의 조건보다 더 유리한 것이 아니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의 품으로 가게 된다. 이때 산업자본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인수전에서 물(?) 먹은 론스타가 한풀이 대안으로 삼은 것이 외환은행이었다.

그런데 십 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에 그런 외환은행을 론스타로부터 다시 인수한 주체가 하나금융지주였다. 덕분에 론스타는 꿈에도 그리던 한국 탈출에 성공했고 하나은행도 숙원사업이던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동지가 돼 한 배를 타게 된 것이었다.

이런 과정들이 정권의 도움이나 묵인 없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금융을 모르는 사람이다. 특히 외환은행 인수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어서 그 소유권의 정당성이 논란의 대상이었고, 론스타가 골프장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도 이미 내부적으로 드러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정권 차원의 도움 없이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치금융은 청산해야 한다. 이것은 문재인정부가 회피해서는 안 되는 과제다.

셋째, 하나금융지주 또는 그 경영진이 ‘불법 금융’에 연루됐다는 의혹은 차고 넘친다. 우선 2012년 5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 수사하다가 결국 유야무야된 하나캐피탈의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 부당 지원 사건,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하나학원의 재정 지원을 위해 하나은행을 부당하게 동원해 은행법을 위반한 사건,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시절인 2015년 1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의 구상금 지급 명목으로 외환은행 돈 약 400억원이 은근슬쩍 ‘잡지급’ 명목으로 론스타에 송금된 사건 등이 있었다.

또 2016년 초에 이상화 전 하나은행 독일법인장을 편법으로 승진시키도록 함으로써 은행법을 위반한 혐의, 그리고 최근에는 기자 매수 건으로 김영란법 위반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투명하게 그 진상을 규명하고 응분의 처벌을 구하는 것은 문재인정부의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다.

마지막으로 관치금융, 정치금융, 불법금융을 청산한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일반적 금융감독 원리가 표방하는 대로 ‘안전하고 건전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금융’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사람을 제대로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금융감독원장은 절대로 모피아, 정피아, 금융법령 위반 전과자가 와서는 안 되고, 혹시라도 하나금융의 경영진이 교체되는 경우에도 모피아나 정피아의 낙하산이 내려와서는 안 된다. 정권이나 관료에 줄을 대고 있는 눈치꾼이 와서도 안 된다. 이것은 문재인정부의 민정팀이 명심해야 할 숙제다.

전성인(홍익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