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숨막히는데… 법엔 ‘미세먼지’ 규정도 없다

입력 2018-03-27 05:01 수정 2018-03-27 17:30
서울 여의도 서강대교에서 바라본 국회 모습. 자욱한 미세먼지에 둘러싸여 흐린 모습만 보인다. 국회는 2016년부터 제출된 미세먼지 관련 법안 40여건을 처리하지 않다가 27일부터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26일 수도권 지역에서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연장, 공공기관 차량 2부제 등을 27일에도 시행한다고 밝혔다. 미세먼지 비상 상황은 28일 오후부터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김지훈 기자

미세먼지 용어 정의조차 없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 2016년 발의됐지만 논의 미뤄
국회, 계류된 관련 법안 40여건 오늘에서야 ‘늑장 심사’ 나서
전문가 “현재 저감책으론 안돼 인기 없어도 특단 대책 내놔야”


한반도가 수년째 미세먼지에 휩싸이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에는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없다. 대기오염 문제를 다루는 기본 법률에 ‘미세먼지’ 정의조차 없는 것이다. 미세먼지에 대한 정의를 신설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자는 내용의 개정안들은 2016년부터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처리된 법안은 없다. 국회가 논의를 미루는 사이 수도권에서는 올해 들어만 벌써 5번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국회는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법안 논의에 착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환경소위원회를 열어 미세먼지 관련 법안 심사를 진행한다. 미세먼지대책 특별법(신창현 의원 대표발의),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강병원 의원 대표발의) 제정이 논의된다.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 수도권 등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등도 함께 다뤄진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미세먼지 관련 법안은 40여건에 달한다. 법안들에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용어를 정의하고, 측정망을 가동해 관련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미세먼지 개선을 위한 특별 회계를 설치하자는 내용도 있다. 비산먼지(공사장 등에서 대기 중으로 직접 배출되는 먼지) 발생 억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제 방안도 있다.

하지만 ‘늑장 대처’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신 의원의 특별법은 지난해 3월, 강 의원의 특별법은 지난해 6월 발의됐다. 현재 계류 중인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 가운데는 2016년 6월 발의된 법안도 있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26일 “미세먼지 법안을 모아서 한 번에 심사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노동 현안이 많다보니 일정이 밀렸다”고 설명했다.

국회는 지난해 11월 미세먼지대책 특별위원회까지 꾸렸지만 역시 별 소득은 없었다. 특위에는 법안 심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로부터 미세먼지에 관한 업무보고를 받거나 화력 발전소 현장을 시찰하는 정도의 활동에 그쳤다.

국회의 입법 논의가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현재 제출된 입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동종인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인기가 없더라도 미세먼지를 실제로 줄일 수 있을 만한 강도 높은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현재 논의되는 저감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 차량 2부제 강제 실시와 같은 좀 더 ‘아픈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부 뿐 아니라 산업부 외교부 국토부 등 관련 부처를 움직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 필요성도 나오고 있다. 김기현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사실상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책은 없다”며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중장기적인 연구와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며, 관련 재원 마련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판 윤성민 기자 pa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