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유탄 맞은 車업계, 성장잠재력 잃을까 우려

입력 2018-03-27 05:05

현대차, 야심차게 준비한 美 픽업 시장 진출 먹구름
철강업계 한숨 돌렸지만 유정용 강관업체는 고심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자동차 분야를 또다시 양보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에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한·미 FTA 협상에서 자동차산업은 10년간 계속 양보만 하고 있다”는 불만이 크다. 가뜩이나 한계에 부딪힌 국내 자동차산업이 이번 협상으로 중장기적 성장 잠재력까지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선 미국산 자동차 쿼터가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상향되면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26일 “BMW, 메르세데스 벤츠, 도요타 등 현재 20%에 육박하는 수입차 점유율이 더 확대돼 국내 브랜드의 입지가 더욱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 협상에 따라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는 한국 자동차 안전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미국 기준만 충족하면 5만대까지 수입할 수 있다. 이 규정은 GM이나 크라이슬러 등 미국업체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글로벌 브랜드에 해당된다.

현대자동차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미국 픽업트럭 시장 진출에도 먹구름이 꼈다. 현대차는 “미국 픽업 시장 진출 시기와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올 초 미국 현대차 법인에서 픽업트럭 개발을 공식 요청하고 한국 본사에서 승인하는 등 픽업 시장 도전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협상으로 미국 픽업트럭 시장 관세 철폐가 유예되면서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 다만 자동차업계는 가장 우려했던 ‘미국 자동차 부품 의무사용’이 이번 협상에서 빠지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분위기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최근 생산과 수출, 내수 감소 등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국내 자동차산업 생산, 내수, 수출은 모두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2월까지 생산은 -5.5%, 내수는 -0.1%, 수출은 -6.1%를 기록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안전·환경 분야는 국내 자동차 제작사에도 부담되는 규제인 만큼 국내 제작사에 대한 규제도 중장기적 차원에서 탄력적으로 재조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요청했다.

철강업계는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지만 업체마다 온도차가 있다. 판재류를 주로 수출하는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업계와 협의해 쿼터제 할당량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정용 강관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고심이 크다. 세아제강 관계자는 “25%의 고관세 부과보다는 쿼터량 설정이 긍정적이지만 유정용 강관 업체에서는 제약이 예상된다”며 “미국 이외의 해외 판로를 개척하고 미국 현지 법인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국철강협회도 성명에서 “대미 수출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되는 강관 업종의 피해가 완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임성수 김현길 기자joylss@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