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모델?… 美 ‘北비핵화 해법’ 제3의 길 찾는다

입력 2018-03-26 05:05

北, 핵개발·무기 능력 모두 갖춰 우크라·리비아 모델 사실상 불가… 인도·파키스탄식 묵인도 어려워
이란 핵협상 타결도 北과는 달라 일부선 ‘점진직 해법’ 추구 지적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내정자의 등장으로 북핵 폐기 프로세스가 4∼5월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비핵화 의지를 밝혔지만, 어떤 방식으로 북핵 폐기 프로세스가 진행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비핵화 모범 사례로 꼽히는 리비아와 우크라이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와의 협상을 통해 완전 비핵화에 동의했다. 하지만 비핵화 합의 당시 이들 국가는 모두 핵능력이 불완전한 상태였다. 핵기술은 물론 핵무기 완제품까지 보유한 북한에 리비아·우크라이나 방식을 곧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미국은 우크라이나·리비아 식 선제 핵 폐기나 인도·파키스탄 식 ‘사실상 핵보유국’ 인정도 아닌 ‘제3의 길’을 찾아야 하는 난제에 직면한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핵개발 로드맵인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 수소탄 인공위성)’ 모델을 따르고 있다. 외교적 압박을 무릅쓰고 핵개발에 성공한 뒤 미국에 접근해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내는 방식이다. 중국은 미국과 구소련의 반대 속에서 핵개발을 진행했다. 원자탄과 수소탄 시험에 이어 1970년 인공위성 발사까지 성공했다. 이후 1972년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핵보유를 인정받았다. 사실상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중국과 같은 길을 걸었다. 두 나라도 핵개발 성공 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암묵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받아냈다. 미국은 중국 견제와 원전 시장 진출을 위해 2007년 미·인도 민간 핵협력 협정을 타결했다. 파키스탄은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협력하는 대가로 경제제재 해제를 얻어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의 핵능력은 인도·파키스탄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중국 견제에 협조하는 대가로 인도·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고 핵을 개발한 유일한 사례고,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 ‘북·미 간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또한 김 위원장 스스로 비핵화를 언급한 만큼 이를 번복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할 수도 없다.

미국 등 주변 강대국은 비핵화 대가로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에 체제안전보장을 약속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리비아는 2011년 나토(NATO)군 공습으로 체제가 무너졌다. 우크라이나는 비핵화 당시 체제안전보장 당사국인 러시아에 2014년 크림반도를 빼앗겼다. 북한이 미국의 체제보장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핵능력 면에서 리비아·우크라이나와 북한의 격차도 크다. 비핵화 합의 당시 리비아의 핵능력은 핵폭탄 원료인 고농축우라늄을 16㎏ 확보하는 데 그쳤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핵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었지만 자체 핵개발 능력은 없었다. 2015년 주요 6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과 핵협상을 타결한 이란 역시 핵실험은 한 번도 못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없다. 이란 핵 합의는 고농축우라늄 생산 제한과 원심분리기 감축 등을 경제제재 해제와 맞바꾸는 게 골자다. 북한은 2006년부터 여섯 차례 핵실험을 했으며 ICBM까지 개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3의 길’로 완전한 비핵화는 장기적 과제로 설정한 채 점진적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25일 “북한을 안심시켜 핵을 보유할 동기 자체를 약화하는 정치적, 외교적 해결이 필요하다”며 “검증과 사찰 범주를 과도하게 잡거나 완벽한 핵 폐기를 강조하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만 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