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26일 임시 국무회의를 거쳐 개헌안 발의를 강행할 예정이다. ‘6월 지방선거와 개헌안 국민투표 동시 실시’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발의를 늦출 수 없다는 게 청와대 측의 입장이다. 그러나 야 4당이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에 부정적이어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개헌 저지 의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어 개헌안 국회 통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당은 장외투쟁까지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이런데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건 극단적 대결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정치권의 저열한 수준을 재확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하고 안타깝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청와대에 책임이 있지만 개헌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은 국회의 책임이 더 크다. 특히 제1야당인 한국당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박근혜정부 때 국정농단사태를 겪으면서 개헌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분산, 기본권 확대, 지방분권 등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그래서 지난해 1월 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대선 과정에서는 한국당을 포함해 주요 정당들이 ‘지방선거 때 개헌안 국민투표’를 약속한 것 아닌가. 1년여를 허송세월하다 이제 와서 대통령 발의를 두고 ‘지방선거용 관제 개헌 음모’라고 비난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문제는 국회가 개헌안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개헌을 위해서는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 국회 개헌안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붙이려면 5월 4일 전에는 여야가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 청와대가 국회 합의안을 존중하겠다고 했으니 모든 건 국회에 달려 있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다. 여야가 국민의 선택으로 바뀔 수 있는 만큼 역지사지로 임하면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할 것도 없다.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할 수 없다면 여야는 국민 앞에 사과하고 개헌을 위한 명확한 로드맵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권력구조·기본권·지방분권 등 핵심 내용 등 개헌안 마련 시한에 대한 합의는 필수다. 그래야 국회에서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부결되는 정치적 부담을 피해가면서 추후 여야 합의로 개헌을 추진할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국회에 개헌을 논의할 주체인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여야 지도부가 결단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건 불문가지다. 개헌을 위해서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난 국민투표법부터 4월 27일까지 국회에서 의결해야 한다. 여야 지도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
[사설] 극단적 대결로 개헌 외면하는 정치권
입력 2018-03-26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