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장악했다. G2(주요 2개국)로 불리는 초강대국 미국과 신흥 강국 중국의 ‘무역 전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뉴욕증시는 물론 아시아 주요 증시가 일제히 폭락했다.
미·중 대결은 ‘그들만의 전쟁’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위인 미국(2017년 기준 19조3621억 달러)과 2위 중국(10조3554억 달러)의 충돌은 세계 경제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데다 미국,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는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해 ‘관세 폭탄’을 쏘았고 중국이 ‘보복 관세’ 카드를 꺼내면서 전운(戰雲)은 짙어졌다. 실물경제보다 먼저 움직이는 금융시장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코스피지수는 23일 79.26포인트(3.18%) 내린 2416.76에 거래를 마쳤다. 하락폭은 남유럽 재정 위기로 94.28포인트 내렸던 2011년 11월 10일 이후 6년4개월여 만에 최대다. 기관은 6480억원, 외국인은 1332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코스닥지수는 41.94포인트(4.81%) 떨어진 829.68로 장을 마쳤다. 일본 증시의 닛케이225지수는 974.13포인트(4.51%) 내린 2만617.86에 마감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10.72포인트(3.39%) 하락한 3152.76으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 마감한 뉴욕증시도 급락 장세를 연출했다.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가 2.93% 하락 마감한 것을 포함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2.52%), 나스닥(-2.43%) 등 주요 지수가 일제히 2% 넘게 주저앉았다.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자 국제자본은 엔화, 금 등 안전자산으로 급격히 쏠렸다. 2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금값은 전 거래일보다 온스당 5.90달러(0.5%) 오른 1327.40달러로 장을 마쳤다. 지난 3월 7일 이후 최고가다.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23일 오후 3시11분 현재 0.46엔 내린 104.81엔에 거래됐다. 2016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는 의미다.
반면 원화 가치는 추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5원이나 뛴 1082.2원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교역 축소 우려로 원자재 가격도 하락세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는 t당 6628달러에 거래됐다. 3개월 만에 최저치다.
G2의 무역 전쟁이 전면전으로 커지면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 치명적이다. 당장 반도체 등 중간재 수출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중국에 수출한 금액 1421억 달러 가운데 중간재 비중은 78.9%에 이른다.
성장엔진인 수출이 식으면 한국 경제에 ‘냉기’가 퍼지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전 세계의 평균 관세율이 현재 4.8%에서 10.0%로 높아지면 한국 경제 성장률이 0.6%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수출은 173억 달러 줄고, 고용은 15만8000명 감소할 것으로 봤다.
한편 금융시장에선 중국이 보복 차원에서 미국 국채를 투매하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국채 1위 보유국(1월 기준 1조1700억 달러)이다. 중국이 대량 매도에 나서면 미국 국채가격 폭락, 시장금리 상승을 유발하면서 금융시장에 상당한 혼란을 안길 수 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그래픽=공희정 기자
검은 금요일… G2 무역전쟁 ‘공포’가 시장을 덮쳤다
입력 2018-03-23 18:17 수정 2018-03-23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