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북핵 ‘리비아식 해법’ 신봉… 北과 최악 궁합

입력 2018-03-24 05:01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가 지난달 24일 메릴랜드주 옥슨힐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더욱 강경한 대북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문해 온 미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매파 인사다. AP뉴시스

카다피, 핵 중도포기 후 무너져… 핵·ICBM 갖춘 北과 사정 달라
본격적 협상 앞두고 긴장 고조… 2003년 국무부 차관 시절 악연
볼턴 “김정일은 포악한 독재자”… 북한 “인간쓰레기와 상종 안해”


‘리비아식 북핵 해법’을 주창하는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되면서 북한 비핵화 협상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북한은 2003년 리비아 비핵화 당시부터 선제적인 핵 폐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특히 리비아 독재정권이 비핵화 8년 만인 2011년 무너지면서 리비아식 해법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다.

리비아는 ‘선(先) 핵 폐기 후(後) 관계정상화’ 방식으로 비핵화를 이뤄내 한때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모범 사례로 거론돼 왔다. 미국은 6자회담이 가동 중이던 2004년에 이미 북한에 리비아식 비핵화를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해 7월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 “논의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후 리비아 정권이 2011년 ‘재스민 혁명’으로 무너지고 국가원수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비참한 죽음을 맞으면서 리비아 사례는 북한에 ‘타산지석’이 됐다. 서방 국가들은 리비아에 비핵화 대가로 체제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리비아 사태가 격화되자 나토(NATO)군이 카다피 정부군을 공습해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북한은 리비아 공습 개시 직후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리비아 핵 포기 방식이란 안전 담보와 관계 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속여) 넘겨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방식으로 드러났다”고 비난한 바 있다.

북한은 지금도 리비아 사례를 자신들의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에 빠져들면 주권을 침해당하고 농락당하게 되며 파멸을 면치 못한다”면서 “이라크와 리비아의 사태가 그것을 뚜렷이 증명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리비아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이기지 못하고 핵 개발을 중도에 포기한 나라다. 핵무기 완제품을 실전 배치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해 놓은 북한과 사정이 다르다. 일각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체제 보장과 관계 정상화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잠정 용인하는 과감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수교한 뒤에도 군사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면서 “북한이 체제안전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핵무기 완제품에 한해 2∼3년 정도 보유토록 용인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방안을 미국이 받을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북 초강경파인 볼턴 신임 보좌관과 북한의 과거 인연은 최악이다. 볼턴 보좌관은 국무부 차관 시절인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향해 “수십만 주민을 감옥과 수용소에 가둬놓고 수백만을 기아에 허덕이게 한 포악한 독재자”라며 “북한에서의 생활은 소름끼치는 악몽”이라고 했다. 그러자 북한은 볼턴 보좌관을 ‘인간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고 비난하면서 “그를 미 행정부의 관리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런 자와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맞받았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