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철강 관세 유예로 급한 불 껐지만 아슬아슬 韓

입력 2018-03-24 05:03

미국이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관세 부과를 하루 앞두고 한국을 잠정 면제국가에 포함시키면서 한숨 돌렸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미국의 계산된 조치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에 패키지 관세 폭탄을 내리면서 양국 간 통상 전쟁이 본격화되는 것도 두 나라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악재다.

미 백악관은 22일(현지시간) 한국을 철강·알루미늄 ‘관세 폭탄’에서 유예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이날 백악관이 내건 전제조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영구면제가 아니라 일시면제라는 것이다. 미 동부시간으로 23일 0시1분부터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한국 등 유예 결정을 받은 나라들은 5월 1일까지 관세가 면제된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4월 말까지 잠정 유예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 기간 한·미 FTA 개정을 거세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세 차례 진행된 개정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집중적으로 양보를 요구한 것이 자동차다. 이미 우리 정부는 픽업 트럭과 관련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산 트럭을 수입할 때 붙이는 25% 관세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내려 2021년까지 없앨 예정인데 철폐 시한을 2021년 이후로 늦추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미국 차가 한국에 수출할 때 안전 규정을 충족하지 않아도 되는 할당량 2만5000대를 늘려달라는 요청도 고려하고 있다.

한국의 또 다른 고민은 미국 정부가 철강 수입할당제(쿼터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CNN 방송에 출연해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모든 나라는 우리의 알루미늄과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쿼터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전문가들은 미국이 쿼터제를 들고 나온 근거로 철강 1330만t을 들었다. 미국 내 가동을 멈춘 제철소를 돌리려면 이 정도 수입물량을 줄여야 한다. 일시 면제된 나라 중 캐나다와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량만 약 1000만t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앞으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더 많은 수입할당량을 받기 위해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에 골치 아픈 일이 추가됐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제재 패키지를 통해 최대 100여개 중국산 제품에 연간 최소 300억∼500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 통상법 301조 조사결과 발표 및 시사’ 보고서에서 양국 간 무역전쟁의 악영향에서 우리 기업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는 한국의 중간재 수요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고, 수출부진에 따른 중국의 성장둔화는 한국의 수출 감소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양국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제현정 차장은 “미국이 통상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자국과 자국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반사이익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오면 미국의 다음 타깃은 한국이 되는 만큼 살얼음판 걷듯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김현길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