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떠도는 사진과 학교명 조합해 글 올리자 “동참” 댓글 1만개 달려
경찰, 미국 정부와 공조 IP받아 집 근처서 붙잡아
블로그 사이트 텀블러(tumblr.com)에 “여동생을 성폭행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던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익명성이 강한 텀블러는 운영하는 곳이 미국 회사여서 수사기관이 추적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개인이 찍은 나체 사진이나 성관계 장면이 마구 올라와 유포되는 성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국제 수사공조로 범인을 잡은 경찰이 텀블러 단속을 강화할지 주목된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텀블러에 친동생이라며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여성의 나체 사진과 함께 성폭행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회사원 A씨(26)를 지난 5일 검거,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텀블러 계정에 여성 나체 사진을 올리고 꾸며낸 이름과 학교명을 적고는 여동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여동생을 범해왔다며 동참할 사람을 공개모집한다고 썼다. 이 글에는 1만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논란이 일자 한 시민단체가 해당 글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확인 결과 해당 학교에는 게시물에 적힌 내용의 얼굴과 이름이 일치하는 학생은 없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특정이 안 되자 경찰은 양해각서(MOU)를 맺고 있는 미국 국토안보부에 협조를 요청, 지난달 27일 A씨의 인터넷 접속 기록인 아이피(IP)를 받았다. 경찰은 제공받은 IP를 토대로 서울 구로구에 있는 A씨 집 근처에서 그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평소 알고 있던 학교명을 조합해 글 내용을 꾸며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가 자신의 텀블러 계정 가치를 높여 돈을 받고 팔기 위해 허위로 자극적인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텀블러는 국내법의 제재를 받지 않아 한국인이 이 사이트에 음란물을 올려도 경찰이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미국 텀블러 본사에 규제를 요청했지만 회사 측은 “우리는 미국 기업”이라며 협조를 거부했다.
이번 검거로 텀블러와 같은 해외 사이트도 경찰 수사의 사각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해외 사이트 이용자가 검거된 사례가 적지 않다”며 “텀블러가 수사에 비협조적이라 미 수사당국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아동 음란물 유포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미국 풍토상 비슷한 혐의는 협조도 쉽고 국제 공조수사도 적극적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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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3-2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