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40㎞ 초반, 스피드로는 분명 평이한 직구다. 그런데 타자들은 “솟아오르는 듯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본인 스스로도 “긴박한 순간엔 역시 직구”라고 말한다. 어느덧 프로 15년차, 이제 베테랑인 한화 이글스의 정우람(사진)은 23일 “던지면 던질수록 공격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직구 평균구속은 2015년 138.2㎞, 2016년 140.2㎞, 지난해 141.1㎞를 기록했다. 연투를 많이 한 30대 투수의 기록치곤 이례적인 증가세다. 올 시즌엔 더 빨라질지도 모른다. 정우람은 “군을 제대한 뒤 몸 상태가 조금씩 좋아졌다”며 “올 시즌에도 크게 몸이 아프지 않고,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팀의 마무리를 맡기엔 여전히 불충분한 스피드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야구계는 정우람의 직구에 독특한 힘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평균을 한껏 웃도는 회전수가 볼끝 움직임을 살린다는 것이다. 야구 통계 사이트인 스탯티즈에 따르면 지난 시즌 정우람의 직구 구종가치는 KBO리그 전체 투수 가운데 5위였다. 정우람의 직구는 평균 구속이 150㎞에 가까운 KIA 타이거즈의 헥터 노에시, LG 트윈스의 헨리 소사의 직구보다 좋은 공으로 분류됐다.
정우람은 “일부러 회전을 많이 먹이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투수로서 직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캐치볼을 할 때도 회전이 똑바른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몸을 효율적으로 써서 공을 잘 전달해야 한다”며 “마지막에 공을 채는 느낌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왼손 중지와 검지엔 흰색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다.
그는 투구하기 직전 공 쥔 손을 글러브 안쪽에 한번 친다. 정우람은 이 동작에 대해 “프로에 온 뒤 줄곧 지켜온 방식”이라며 “몸통 회전을 자연스럽게 해 준다”고 말했다. 다른 투수들보다 공을 깊게 잡는 것도 나름대로의 비결이다. 정우람은 “다른 투수들이 두 손가락을 실밥에 댄다면, 나는 실밥의 위쪽 부분까지 잡는다”고 했다.
정우람은 올 시즌 마운드에서의 변화를 예고했다. 직구와 체인지업 이외의 제3, 제4의 구종을 실전에서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정우람은 “슬라이더의 비중을 높이고, 투심패스트볼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좌타자와의 승부에서 투심을 던질 줄 알던 그였지만,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는 기존의 것과 다른 ‘떨어지는 투심’을 연마했다고 한다. 정우람은 “느린 공으로는 슬러브도 있다”고 말했다.
정우람은 올 시즌 한화의 투수조장을 맡았다. 김범수 서균 등 ‘영건’들이 그의 피칭을 지켜보다 질문을 쏟아낸다. 어린 선수들과 송진우 투수코치 사이에서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같은 좌완인 송 코치와는 통하는 점이 많다. 정우람은 “송진우 코치께서 선수들을 편안히 해 주시고, 생각을 잘 읽어 주신다”고 말했다.
2016년 16세이브, 평균자책점 3.33이던 정우람은 지난해 26세이브, 2.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 기간 피안타율은 0.222에서 0.214로 낮아졌고 9이닝당 탈삼진은 9.44개에서 11.90개로 늘었다. 정작 본인은 “안일하게 승부했다가 놓친 게임이 많았다”며 실패를 복기한다. 정우람은 올 시즌 세이브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블론세이브를 줄이고, 디딤돌이 되는 선배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정우람, ‘느리지만 강한 직구’로 마운드 지킨다
입력 2018-03-2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