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모르쇠 전략은 안 통했다

입력 2018-03-22 23:45
이명박 전 대통령이 15일 오전 피의자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영장실질심사 포기 강수로 ‘정치보복 프레임’ 노렸지만 법원 “혐의 소명된다” 판단
측근들과 말맞추기 등 증거인멸 가능성 우려 참작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르쇠 전략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제기된 다스 실소유 논란 등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던 게 그를 옭아맸다. 이 전 대통령은 방어권인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포기하는 강수를 두며 ‘정치 보복’ 프레임을 노렸지만 이 역시 자충수가 됐다.

검찰은 지난 19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110억원대 뇌물과 348억여원의 횡령 등 10여개 혐의를 담았다. 구속영장 발부 조건 중 하나인 ‘사안의 중대성’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규모였다. 현행법상 뇌물 액수가 1억원이 넘으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적용을 받아 10년 이상의 무거운 형이 나올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제시한 범죄 혐의에 대해 책임을 전가하며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법원은 22일 “혐의가 소명된다”고 판단했다.

이 전 대통령이 금품수수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다스의 실소유주였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성우 전 다스 사장 등 이 전 대통령에게 등 돌린 최측근들의 진술이 뼈아픈 대목이 됐다. 이들이 “처벌을 경감받기 위해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는 이 전 대통령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의 방조범으로 구속 기소된 김 전 기획관과의 형평성도 법원 판단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을 구속 기소하면서 이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명시했다.

무엇보다 이 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부인 전략이 최악의 결과를 끌어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영포빌딩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청와대 문건 등 자료에 대해 “조작됐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해당 문건들은 이 전 대통령 측이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며 돌려 달라고 했던 문건이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구속 필요 사유로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과정이나 2008년 BBK 특검 수사 등에서도 다스나 도곡동 땅 등 차명재산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부인해 온 점도 증거 인멸 우려를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과거에도 김 전 기획관 등 측근들과 말맞추기와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전 대통령의 재산 관리인인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영포빌딩에 보관하던 차명재산 리스트를 훼손하려다 구속된 점도 영장 발부에 참작됐다.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 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 김 전 다스 사장 등 주요 관련자들이 불구속 상태여서 말맞추기가 가능하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에서 입장을 충분히 밝혔다”며 영장실질심사 불출석을 결정했다.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됐다. 법원은 그러나 방어권 행사 거부를 혐의 인정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조민영 황인호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