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통해 200명 발언 신청 “말하는 것만으로도 치유 시작” 미투 조롱하는 세태 지적하기도
“관현악과 교수 상습적 성폭력” 이화여대 성추문 또 불거져
1952년생이라고 밝힌 한 여성이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6살 때 동네 영화관에서 모르는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몸을 더듬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한 남자가 가슴을 치고 간 적도 있었고요.”
그는 “최근의 ‘미투(#MeToo) 운동’을 보고서야 내가 당한 것도 성폭력인 걸 깨달았다”며 “1952년생인 내가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2018년의 미투 운동을 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노동·시민단체들이 모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22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를 열었다. 오전 9시22분부터 시작된 시민들의 발언은 2018분(33시간 38분) 동안 이어져 23일 오후 7시까지 진행된다. 온라인을 통해 200명의 시민들이 발언을 신청했고 현장 참여도 이어졌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나온 김민지(27·여)씨는 피해자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전문의 윤정원씨의 글을 대독했다. 그는 “성폭력피해자가 상담소를 다녀온 뒤 앓던 골반통이 많이 좋아지기도 했다”며 “말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 처벌에는 공소시효가 있지만 치유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활동가들은 발언대에 올라 이주여성들의 사례를 전했다. 이들은 “이주여성들은 시아버지나 사돈의 친구 등 주변인에게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거나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드유(WithYou)’ 발언도 나왔다. 한 20대 여성은 “그동안 나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을 꿈꾸기보다 나쁜 아저씨를 만나면 어떻게 도망갈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하고 “이제는 피해자들과 연대해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외쳤다. 미투 운동을 조롱하는 세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독을 요청한 한 참여자는 “웃으면서 ‘너 그러면 나도 미투한다’는 둥 미투 운동을 가볍게 소비하는 남자 선배가 너무 미웠다”며 “잠도 안 올 정 정도로 무력했다”고 토로했다.
이화여대에서는 교수 성추문이 또 불거졌다. 이대 학생들은 페이스북에 올린 성명문에서 “관현악과 소속의 S교수가 전공 지도교수로 부임한 후 개인레슨 시간은 물론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학생들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비롯한 성폭력을 일삼아왔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 8일부터 2주간 개설한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에는 292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임주언 허경구 심우삼 김성훈 기자 eon@kmib.co.kr
52년생 여성 “6세 때 누가 몸 더듬어… 지금 보니 성폭력”
입력 2018-03-2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