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수년간 벼려온 ‘디지털 관세’ 부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구글, 애플 등 과세를 피해온 거대 인터넷 기업들에 수익에 합당한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최근 철강 관세 인상 계획을 밝힌 미국에 맞불을 놓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집행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인터넷 기업 대상 3% 세율 부과를 내세운 디지털 관세 잠정안을 제시했다. 시행 시 EU는 인터넷 기업들에서 연간 약 50억 유로(6조6200억원)의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세기준의 변화다. 이번 안은 사용자들이 어디서 해당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인터넷 기업들이 여태 본사나 공장 위치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는 점을 악용해 세율이 낮은 국가로 이전, 사실상 조세회피를 벌여온 행태를 근절하겠다는 의도다. 실효성이 증명되면 2020년을 목표로 새 관세기준을 준비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이를 뒤따르면서 각국 과세의 패러다임이 뒤바뀔 수 있다.
이번 안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유럽을 상대로 철강·자동차 관세 인상계획을 밝힌 데 맞대응한 것이란 평가도 있다. 새 관세안은 유럽 기업을 포함해 120∼150개 업체를 대상으로 삼았으나 시장지배력이 큰 페이스북과 구글, 애플 등 미국 업체가 주된 타깃이다.
주 과세 대상은 디지털광고로 수익을 내는 회사, 자체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에서 등록·연회비를 걷는 기업, 사용자 데이터를 팔아 수익을 내는 시장조사업체 등이다.
낮은 세율로 인터넷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해 온 아일랜드는 이번 조치에 가장 격렬하게 반발했다. 리오 버라드커 총리는 관세안 발표 직후 “보다 국제적인 규모의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면서 “EU는 OECD가 새 관세안 연구작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이 통과되려면 아일랜드를 포함한 EU 28개 회원국 전체가 동의해야 한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U “애플·구글, 돈 버는 나라에 세금 내라” 과세안 마련
입력 2018-03-2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