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 법원에 그는 없었다… MB ‘피 말린 하루’

입력 2018-03-22 19:01 수정 2018-03-22 23:47
세종시 다솜로 대통령기록관에서 22일 한 관람객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 영상물을 보고 있다. 2008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 장면이다. 뉴시스

피의자 심문 절차 혼선… 영장 판사, 오전 서류심사 결정
MB , 커튼도 닫은 채 자택 대기… 요란했던 朴 전 대통령과 대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운명이 결정되던 22일 법원에 그는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법원이 구속 여부를 결정하기 전 피의자에게 항변을 듣는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기회를 쓰지 않았다. 대신 법원 결정이 나오기까지 자택에서 기다렸다. 서울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은 구속 집행 등에 대비한 삼엄한 경비 속에 적막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됐던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은 닫혀 있었다. 피의자들이 심사받기 위해 드나드는 4번 출입구 주변에는 이 전 대통령의 출석에 대비해 만들어둔 포토라인만 덩그러니 있었다.

법원은 지난 20일 심사기일을 정해 통보했지만 이 전 대통령이 불출석 의사를 밝히면서 변호인만 대리로 나와 심문을 받을지를 놓고 법원과 검찰, 변호인 간에 혼선이 일었다.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절차를 다시 검토한 끝에 이날 오전에야 “피의자 본인의 심문 포기 의사가 분명하다”며 심문 절차 없는 서류 심사를 결정했다.

법정에 출석해 목소리를 높이는 공방이나 눈물 섞인 읍소는 없었지만 검찰과 이 전 대통령 측의 서류를 통한 소리 없는 전쟁은 치열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법원에 낸 구속영장청구서는 본 서류만 A4용지 207쪽, 상세한 구속 사유를 담은 별도 의견서는 1000장이 넘는다. 증거 기록까지 포함하면 총 157권에 8만쪽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서면 심사로 진행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같다. 영장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추가 의견서와 추가 증거자료를 여러 차례 나눠 계속 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도 지난 19일 구속영장 청구 직후부터 준비해 온 100여쪽 분량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1∼2시간 분량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도 출력본으로 법원에 냈다.

서류 심사가 진행되는 긴 시간 이 전 대통령은 커튼이 쳐진 자택 안에서 대기했다. 이 전 대통령 처벌을 요구하는 몇몇 단체들이 자택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서 구속 촉구 집회를 열었지만 집 앞은 엄격히 통제돼 조용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방문해 40분가량 머물고 짙은 필름으로 가린 고급차량 서너 대가 오간 게 전부였다.

지난해 3월 3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에 직접 출석한 뒤 8시간40분에 걸쳐 구속 수사 부당성을 호소했던 것과 대비된다. 그는 심문을 마친 뒤 검찰이 준비한 차를 타고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이동해 이튿날 새벽 3시3분 구속영장 발부 결정 때까지 검찰 조사실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4시30분쯤 서울구치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조민영 이가현 방극렬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