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보복에 맞보복… 공룡 싸움에 ‘자유무역’ 판 깨질라

입력 2018-03-23 05:00
韓·EU·호주 등과 면세 협상 대신 모든 화력 중국에 집중
中 때리면 증시·환율 요동 글로벌 상품 공급망 타격 북·미 회담에도 영향줄 듯
“트럼프 거래의 기술” 해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은 중국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수정됐다. 그 대신 한국과 유럽연합(EU) 등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무역수지 개선을 전제로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유예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무역전쟁의 타깃을 중국으로 좁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내 지지층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동맹국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1일(현지시간) 하원 세입위원회에 출석해 “현재 한국, EU, 아르헨티나, 호주와 철강·알루미늄 관세 면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완료를 조건으로 관세 부과가 일시 면제된 캐나다, 멕시코와 같은 상황”이라고 말해 면제를 시사했다. 이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한국과 EU 등 미국의 동맹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특정 중국산 기술 제품에 대한 규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미국 기업과의 합작벤처 설립 등을 통해 중국이 탈취한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에 대한 보복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전쟁 대상을 중국으로 국한하더라도 중국이 보복관세 부과 등으로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무역전쟁의 파장과 부작용은 전 세계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미·중 무역전쟁은 달러화, 미국 증시, 멕시코 페소에서 호주달러에 이르는 수많은 통화의 환율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이 주춤하고,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중국 수출품의 43%가 다국적 회사에 의해 수출된다는 점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타격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 미·중 간 갈등은 국제 정치·안보 지형에 영향을 미쳐 5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프로그램을 억제하기 위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협력을 구해야 하는 시점에 중국과의 갈등을 높이는 모순적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도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취임 후 처음 주재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수입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위원들 간 논의가 있었다”며 “이로 인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낮출 정도는 아니지만 무역정책이 우려스럽다는 견해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가 밀어붙이는 무역전쟁 조짐이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의 기술’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라인스 프리버스가 한 말이다.

프리버스 전 실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대중국 무역적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상징적인 문제”라며 “그는 통상 문제에 대해서는 뼈다귀를 문 개처럼 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협상 테이블에 모든 칩을 다 올려놓고 협상이 시작될 수 있도록 상대를 수세로 모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들과 일대일로 해결을 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