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북한의 잇단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 미국의 단호한 대응으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던 한반도에 대화국면이 빠르게 조성됐다. 남북한은 지난달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오랫동안 닫혀있던 대화의 창을 열고 특사 교환방문을 통해 오는 4월 말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여는 데 전격 합의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5월에는 북한과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두 차례 정상회담은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동북아 지역 정세에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극한으로 치닫던 대결 국면을 타개하고 이런 흐름을 이끌어낸 정부의 역량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불신이 증폭돼 오히려 한반도의 위기를 재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미 최고지도자들이 정상회담에서 큰 원칙에 합의한다면 후속 실무협상을 통해 구체적 로드맵을 마련하고 이행해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두 차례 정상회담의 목표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회담에서 서로의 요구조건과 진의를 확인하고 주고받기를 통해 이익의 균형을 맞춰야 가능한 일이다. 한·미의 최종적인 목표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다. 북한이 전제조건을 달아 비핵화 의사를 밝혔지만 회담에서 좀 더 확실한 의지를 표명하고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 가입, 전면적 핵 사찰 수용, 핵 폐기 단계별 검증 등이 포함돼야 하는 건 물론이다.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숨통을 조여 오는 대북제재를 완화하기 위해 핵 협상을 이용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해소할 책임은 북한에 있다. 핵동결과 미국 본토를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수준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데 이는 한국과 중국,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을 촉발시켜 동북아의 긴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되면 반대급부가 협상의 테이블에 오르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심적인 요구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전 보장(CVIG)’이다. 이를 위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이나 축소,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를 통한 관계 정상화, 대북제재 해제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주변 강대국, 특히 미국의 이해가 걸려 있어 하나하나가 성사되기 쉽지 않은 사안들이지만 북한의 CVID를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사안들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비핵화와 북 체제 보장 동시 추진(쌍궤병행)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CVID와 CVIG의 맞교환 방식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 문제는 동북아의 군사·외교적 완충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여지가 있어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북핵 문제는 주변 강국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난도의 고차방정식이다. 그런 만큼 정교한 해법이 필요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2005년 북핵 6자회담 결과물인 9·19공동성명이 휴지조각이 돼 버린 이유와 과정을 복기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 미국 등 주변 4강과 긴밀히 협력하고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기 전에는 대북 압박을 유지하는 원칙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반드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당장 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을 논의할 오는 29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는 게 시작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여의춘추-라동철] 북핵 해법은 CVID와 CVIG 맞교환
입력 2018-03-2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