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노용택] 개헌논란 결국 왕좌의 게임?

입력 2018-03-23 05:00

정치권이 개헌 문제로 시끄럽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가 모두 나서 각자의 안이 최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개헌은 해야 할 것 같은데, 내용이 복잡하고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개헌 논란의 핵심은 결국 ‘누가 권력을 잡기 쉽게 제도를 바꾸느냐’라는 권력구조 개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모두 “개헌을 이용해 상대방이 장기집권 할 수 있다”는 의심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개헌을 통해 원하는 권력구조는 ‘대통령 권한을 줄인 4년 연임제’다. 한국당은 대통령의 총리 임명권을 국회에 넘기는 ‘분권 대통령제-책임총리제’를 주장한다. 민주당은 한국당 개헌 방향에 대해 “사실상 내각제를 하자는 것”이라며 절대불가 입장이다. 한국당이 총리임명 제도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253석의 지역구 의석 중 영남 지역은 65석이고 호남은 28석에 불과하다. 대구·경북(TK) 등 영남권을 중심으로 안정적 의석 확보가 가능한 한국당은 다수당이 총리를 임명(혹은 추천)하는 책임총리제에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에 홍준표 총리 이런 상황이 될 수 있다. 국정 운영이 되겠느냐”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내각제가 도입되면 일본 자민당처럼 보수여당 장기집권 체제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국당도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 연임제가 마뜩찮다. ‘보수가 궤멸됐다’는 말이 나올 만큼 처참한 지지율로 차기 대선 승리를 기대하기 힘든 한국당은 대통령 연임제가 도입되면 민주당 정권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제를 유지한 민주당 개헌안을 두고 “개헌을 민주당 장기집권 도구로 가져가겠다는 발상”이라고 비난한 이유다.

가뜩이나 합의가 어려운데, 소수 야당도 끼어들어 상황은 더 꼬였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개헌 논의를 계기로 정당 지지율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밀어붙일 태세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수정당 의석 점유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이던 한국당이 최근 ‘논의 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꾸자 정의당과 평화당은 한국당이 주장하는 ‘개헌 국민투표 연기’에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며 화답했다. 평소 물과 기름 같았던 한국당과 정의당도 정치적 이익이 일치하자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개헌안이 발의돼도 의결에는 재적의원(293명) 3분의 2(196명) 찬성이 필요하다. 121석의 여당 힘만으로는 개헌안 국회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청와대는 26일 개헌안 발의를 밀어붙일 태세다. 청와대가 내놓은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돼도 잃을 게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문 대통령은 대선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이 생긴다. 청와대 개헌안에 포함된 지방분권 내용은 6·13 지방선거 승리에 도움이 된다. 특히 성공이든 실패든 개헌을 추진해 논의가 한번 일단락되면, 향후 ‘야당이 언제든지 개헌 문제를 끄집어 내 공격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부담에서 해방된다. 각 정당의 엇갈리는 이해관계 속에 대통령발 개헌 발의가 이뤄지면 정국은 급속히 냉각될 게 뻔하다.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가 양보하고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개헌안 중 여야 이견이 없는 부분을 우선 처리하고 정부형태 개헌을 미루거나, 10월까지 ‘권력 분산’을 포함한 완전한 개헌안을 처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국회는 권력만 좇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개헌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일 때다. 전직 대통령 2명 중 1명은 탄핵돼 구속돼 있고, 나머지 1명도 구속위기인 상황에서도 국민의 약 70%는 의원 내각제보다 대통령제를 원하는 현실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은 정쟁만 일삼는 국회가 권력을 갖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

노용택 정치부 차장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