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고양이 전입신고식 2

입력 2018-03-23 05:03

이사온 집을 맹랑이는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담한 마당이 내다보이는 정남향 거실 통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면 배를 드러내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해바라기를 오지게 했다. 창밖을 뚫어지게 내다보며 저공비행하는 까치와 앞집 강아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기도 했다. 일년 전 제주로 오면서 호되게 치른 전입신고식? 그게 뭔데? 싶었다. 그러나 아뿔싸, 방심한 게 탈이었을까. 녀석은 여지없이 탈이 났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 곳곳이 토한 흔적이었다. 다음날 위액까지 게워내던 녀석의 토사물이 벌건색을 보이기까지 한다. 싸안고 병원으로 달려가 진찰 받은 결과, 역시 배뇨 문제였다. 이사 스트레스, 크죠. 의사는 카데터 시술을 권했다. 작년처럼 채혈 때 발버둥치다 진료대 위에 오줌을 펑 쏟아놓지도 않으니, 마취에 며칠 입원에, 그 고생을 다시 시켜야 하나. 나는 조금 지켜보다 안 되면 데려오마 하고 맹랑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녀석의 궁둥이를 노려보며 시시때때 화장실로 쫓아보내기를 한나절, 의사가 정해준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해졌다. 달랑 들어 화장실에 앉히고 배를 꾹꾹 눌러대자 성공이다! 그 조르르 소리가 그렇게 반갑게 들릴 수가 없었다.

때로는 무식이 약이네요, 말하자 의사는 기분 좋게 하하 웃으며 잘하셨어요! 칭찬해주었다. 그러더니, 닷새치 약을 처방하는 게 아닌가! 아침저녁으로 두 알씩이나!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칠 줄은 몰랐다. 아침에는 얼떨결에 약을 삼킨 맹랑이, 하루 동안 밥 잘 먹고 전력을 회복해서, 저녁에는 결사항전에 나선다. 담요로 칭칭 싼 녀석의 몸을 다리로 휘감아 누르고, 한 손으로 입을 벌리고, 다른 손으로 캡슐 두 알과 물을 쏟아넣고. 피차 사력을 다한 끝에 승리는 인간에게 돌아갔지만, 휘날리는 털과 피맺힌 발톱자국이 전투의 살벌했음을 증언한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간식도 마다한 채 소파 밑에서 나올 줄 모르는 녀석. 저 약을 어찌 다 먹이나, 눈앞이 캄캄하다. 이번 전입신고식은 아무래도 나에게 더 호된 것 같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