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상> 문팬 또는 문빠, 그들은 누구인가 3人 인터뷰
<중>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나
<하> 그들은 왜 비판 없이 지지하나
‘노무현 트라우마’ 겪으며 맹목적인 ‘문재인 지키기’
힘겹게 쟁취한 정권 보호하려는 의지 강해
극렬 지지자들 “우리는 누구에게도 통제 안 받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최종 확정된 2002년 4월 27일 저녁 경기도 덕평에서 열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희망 만들기’ 대회에 참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여러분은 제가 대통령 되고 나면 뭐하지요?”라고 물었다. 단 한 명의 지지자만 “노무현을 지킵니다!”라고 외쳤을 뿐 대부분의 지지자들은 “감시! 감시!”라고 외쳤다. 노사모 출신인 정청래 전 의원은 21일 “노무현재단 모임에 가면 회원들이 그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며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는 그런 (비판적 지지) 태도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의 맹목적 지지 태도는 정치권이 이들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일부 강성 지지자는 문재인정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계올림픽 선수 등 피아(彼我)와 정치인·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문자메시지, 댓글로 공격한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문빠’ ‘문슬람’ ‘문각기동대’ 등의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왜 이들은 문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일까.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의 심리적 기원은 노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도올 김용옥 선생과 대통령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수의 저항은 설득하고 극복하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그런데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과의 마찰과 갈등이야말로 정말 감당키 어려운 것이지요.” 노 전 대통령은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등의 이슈를 거치며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지지자들을 보게 된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20%대 지지율로 퇴임한 뒤 검찰 조사를 받다가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지지자들에게 집단적 죄의식으로 남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집단적 죄의식이 문 대통령에게 투영됐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문재인정부는 노 전 대통령 핏값으로 쌓은 금자탑”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죄의식은 지지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비판적 지지를 하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는 것보다 맹목적 지지를 하는 ‘의리 있는 시민’이 되는 게 좋다는 논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정치 활동에서 손을 뗀 노사모와 달리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은 온라인 권리당원 가입 등을 통해 현실 정치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노무현 트라우마’는 문 대통령 지지자의 행동 방식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다.
그러나 ‘노무현 트라우마’만으로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의 맹목성을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팬카페 ‘노란우체통’ 운영자 ‘박달사순’(닉네임)씨도 “노사모와 우리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가 노사모와 선을 긋는 이유는 현재 지지자의 다수는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2015년 문 대통령 당 대표 시절, 지난해 대선 세 차례에 걸쳐서 문 대통령 지지층은 대폭 확장했다. 최대 팬카페 ‘젠틀재인’의 2010∼2011년 가입자 수는 2000여명이었지만 현재는 5만8000여명이다. 권순욱 뉴비씨(NewBC) 대표는 “현재 지지층은 노 전 대통령과 상관없이 문 대통령의 정치를 보고 모여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재 핵심 지지자에겐 ‘노무현 트라우마’의 심리적 흔적은 희미하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 이니(문 대통령 애칭) 하고 싶은 것 다 해’로 대변되는 ‘포스트 노무현 트라우마’ 지지층의 맹목주의의 기원은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문 대통령 핵심 지지자들이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 언론까지 공격하는 것을 보면 그들에겐 힘겹게 쟁취한 정권을 보호하려는 열정을 넘어 반지성주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반지성주의적 태도가 표면화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반지성주의는 일종의 반계몽주의로도 볼 수 있다. 합리적인 반론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이나 주장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지난해 대선 당시 문 대통령 캠프에서 일했던 인사는 “극렬 지지자인 파워트위터리안 5명을 만나 과한 행동이 문 대통령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린 누구로부터도 통제받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향한 맹목적 지지가 대통령에게 집중된 한국 권력 구조의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노동운동, 학원민주화운동이 있었고 이런 운동이 체제를 바꾸는 변혁을 만들어냈다”며 “이번 촛불항쟁 뒤에는 그런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지지자들의 행동 양식을 보면 촛불로 점화된 사회개혁의 성공 여부가 문 대통령에게 전부 달려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국가는 강하나 사회는 약하고, 대통령과 청와대에 너무 권력이 집중된 한국 현실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성민 신재희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文팬 또는 文빠 탐구]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열정 넘어 反지성주의
입력 2018-03-2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