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상황은
‘디지털 컨트롤타워’ 세우고 외부 전문가 모셔오는 등
앞다퉈 역량 강화 나서지만 단편적 수준이라는 지적도
▨ 글로벌 은행들은
美 빅4 중 한 곳 체이스뱅크 ‘지점의 디지털화’ 선두주자
성공 사례 싱가포르 DBS도 지원 업무까지 완전 디지털화
▨ 앞으로 갈 방향은
‘개방형 혁신’ 모델에 달려 기존 고객 기반 플랫폼 구축
창의적인 핀테크와 손잡고 참신한 서비스 개발해야
코닥은 카메라 필름의 대명사였다. 1970년대 중반 미국 필름 시장의 90%를 점유했고, ‘코닥 모멘트’(Kodak Moment·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은 순간)라는 말도 유행하며 고유명사인 회사 이름이 보통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코닥은 1975년에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어내며 앞선 기술력도 뽐냈다. 하지만 코닥은 디지털 시대 개막 예고를 무시했고, 영광을 뒤로한 채 2012년 파산했다.
이런 격변은 은행에도 찾아올 수 있다. 지난해 출범해 돌풍을 일으킨 인터넷전문은행은 물론 여러 핀테크 업체가 성장해 은행을 대체할 것이란 우려도 대두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주요 금융지주와 시중은행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얼마나 진행됐을까. 어떤 부분이 미흡하고, 선진국 은행은 얼마나 앞서가고 있을까.
국내 금융사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지주와 시중은행들은 앞 다퉈 디지털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그 증거가 디지털 컨트롤타워의 등장이다. KB금융은 지난해 시너지추진부에 ‘디지털 전략팀’을 만들고 올해 디지털전략부로 격상시켰다. 여기에 더해 미래채널그룹에 ‘애자일(Agile·기민한) 스쿼드’ 부서를 운영해 핀테크 인력도 키운다. 신한금융도 지난해 하반기 지주사와 각 그룹사에 디지털금융최고책임자(CDO·Chief Digital Officer)를 신설했다. 이들이 모인 ‘CDO 협의회’가 그룹 차원의 디지털 사업에 대한 방향을 결정한다. 신한금융은 그룹 차원의 디지털혁신연구소 ‘신한디지털캠퍼스’도 이달 초 열었다. 그룹 내 디지털 금융 관련 핵심 조직을 한 곳에 모았다. NH농협금융도 디지털금융부문과 CDO를 신설했고, CDO가 농협금융 계열사 전체의 디지털 전략과 사업을 총괄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서라면 외부 전문가 수혈에도 거리낌이 없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12월 ‘DT Lab(Digital Transformation Lab)’을 신설했다. 연구소의 총괄 부사장 겸 최고기술 책임자(CTO·Chief Technology Officer)로 실리콘밸리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연구소장 출신 김정한씨를 영입했다. 장현기 신한은행 디지털전략본부장도 삼성전자와 IBM코리아를 거친 인공지능(AI) 전문가다. 우리은행도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 전문가를 CDO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시중은행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단편적인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의 디지털 전환 필요성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국내 시중은행들이 플랫폼 중심의 사업 모델 구축 같은 총체적인 디지털 전환보다 빅데이터나 AI 등 기술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류 연구위원은 관련 전문 인력 부족, 개인 정보 활용이 어려운 제도적 문제, 고착화된 전통 시스템, 유연하지 못한 조직 구조, 외부와 협업하는 혁신 문화 미흡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글로벌 은행들의 디지털 프랜스포메이션
주요 글로벌 은행들은 똑같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 글로벌 은행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특징 3가지를 꼽았다. 모바일 관련 기술 개발로 주도권 확보, 오프라인 채널의 판매 경험 구현, 공급자 중심이 아닌 고객 만족도 제고가 그것이다.
미국의 빅4 은행 가운데 하나인 체이스뱅크(Chase Bank)는 지점의 디지털화라는 측면에서 선두주자다. 애플, 아마존 같은 기업과 디지털 장치나 플랫폼을 놓고 협업하는 디지털뱅킹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애플의 음성비서 ‘시리(Siri)’와 연동해 간편 조회나 이체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상담 인력 2∼3명만으로 구성된 소형 점포를 운영하고 간편 업무는 셀프서비스 키오스크 데스크로 대체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나 씨티뱅크도 체이스뱅크와 유사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 판매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온라인 채널로 금융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선 훨씬 단순한 형태로 판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DBS은행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16년 7월 여러 글로벌 은행을 제치고 유로머니지(紙)에 ‘월드 베스트 디지털뱅크’로 뽑혔다. DBS의 디지털뱅킹 전략은 단순히 기술만을 갖추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고객의 은행 업무를 즐겁게(Making Banking Joyful)’라는 슬로건 아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있어선 상품 판매가 이뤄지는 영역뿐만 아니라 지원 업무를 맡는 부문에도 완전 디지털화를 추구했다. 또 IT 부서와 사업 부서를 통합한 T&O(Technology and Operations) 부문을 신설하고, T&O 부서를 개별 사업부문이나 해외 지역마다 두어 유기적인 디지털화를 추진했다. IT 부서가 독립된 부서로 존재하는 일반적인 모습과의 차이점이다.
무엇이 필요한가
은행이 맞을 격변의 진앙은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제나 송금은 더 이상 은행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정보통신(ICT)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 신세계 같이 제조 유통 대기업이 운영하는 ‘○○페이’는 간편결제 및 간편송금 서비스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간편결제는 하루 평균 243만건(762억원)이나 이뤄졌다. 간편송금도 하루 평균 98만건(480억원)에 이르렀다. 은행권에서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통신사가 뛰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개방형 혁신’이다. 류창원 연구위원은 “‘은행이 다 할 수 있다’는 폐쇄적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기존 고객 기반을 활용해 플랫폼을 구축하고 창의적인 핀테크 사업자와 협력해 참신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고객을 점점 잃지 않고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외국의 오픈API(외부 개발자나 사용자에게 공개하고 공유하는 프로그램) 정책을 면밀히 분석해 국내 실정에 맞는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개인정보 관련 법과 제도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And 경제인사이드] 디지털화 못하면 코닥처럼… 나날이 바뀌는 은행 풍경
입력 2018-03-2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