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삼청교육대, 진상 밝혀져야”

입력 2018-03-22 00:00
이적 목사(김포 민통선평화교회)가 2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삼청교육대의 실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유영대 기자
강제로 끌려온 교육생들이 목봉체조를 하는 모습. 조교들은 문신이 있는 교육생들만 열외로 불러내 홍보사진을 찍었다. 유영대 기자, 국민일보DB
24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이적(61·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 목사가 삼청교육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보고회와 실화소설 ‘한국판 수용소군도 삼청교육대’ 출판기념회를 갖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삼청교육대(청송감호소) 최장기수다. 1980년 10월 술집 외상값이 밀려 있다는 이유로 끌려가 3년간 모진 고초를 당했다. 죄명은 ‘계엄 포고령 위반’이었다. 그의 시(詩) ‘어머니’의 ‘중풍 든 아버지가 고개를 모로 돌렸다’는 구절도 문제 삼았다. ‘중풍 든 아버지’를 민중을 선동하는 사람이라고 잘못 해석한 것이다.

삼청교육대에서 그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 당시 황용대 군목을 만나 기독교에 귀의했고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거듭났다. 1989년 국회 5공 비리조사 특위에 출석해 증언하기도 했다.

그는 21일 “삼청교육대는 깡패로 위장된 양민들을 군부대로 끌고 가 백성을 우민(愚民)화하고 인권을 유린한 군사정권의 대표적 만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문도 모른 채 청송감호소에 갇혀 1∼3년, 심지어 5년간 폭정에 시달렸다”며 “사상자는 물론, 출소 뒤 후유증으로 인한 장애인이 속출했지만 몇 백 만원의 쥐꼬리 배상금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했다”고 했다.

이 목사의 바람은 사망자 및 상이자 숫자, 장기 구금자 실태 등 삼청교육대의 피해 실태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다. 아직 책임자 처벌과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삼청교육대특별법’을 제정하고 사건 재조사, 관련자 처벌이 절실하다고 했다.

삼청교육대 생활은 절망적이었다. 어두침침한 실내 빛과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노역과 폭행, 물고문을 받았다. 한 달간 오리걸음으로 연병장을 기어 다녔다. 일부 조교는 곱상한 10대 소년들을 성적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끌려온 이유조차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동네에서 옳은 소리 하는 사람을 사회 불만 세력이라고 끌고 왔고, 장가보내 달라고 투정하는 노총각도 끌려 왔다. 하지만 진짜 깡패들은 미리 다 빠져나가 조무래기 건달만 줄줄이 잡혀 왔다.

직장마다 정화위원회를 설치해 평소 찍힌 사람을 잡아들였다. 심지어 노동운동을 한 노동자, 기자와 방송국 사장, 신문사 편집국장, 야당 지역위원장, 육군 보안사령관을 지낸 장성까지 끌려 왔다. 경찰은 머릿수 채우기에 바빴고, 1명당 수당까지 챙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조교들은 문신 있는 사람은 열외로 불러냈다. 카메라 모델 역할을 할 사람이었다. 화면을 본 국민들은 교육생 전부가 우범자인 양 착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그는 현재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위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목사는 “전두환정권은 억울하고 불쌍한 수많은 사람을 권력의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