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컷] “셰익스피어씨 당신 책 ‘햄릿’ 출판거부합니다”

입력 2018-03-23 05:03

망작들 : 당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이유/리카르도 보치 지음, 진영인 옮김/꿈꾼문고, 156쪽, 1만3000원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이북(e-book)으로 책을 읽는 시대, 21세기. 셰익스피어라는 작가가 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왔다. 제목은 ‘햄릿’. 담당 편집자는 그에게 원고를 ‘거절’하는 편지를 보낸다. “셰익스피어씨께.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살아야죠. 사느냐 죽느냐가 어째서 문제가 되나요.”

이게 무슨 망언인가. ‘망작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이유’에는 이런 망언이 가득하다. 플라톤, 호메로스, 단테,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프란츠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세계적인 문호들의 고전 작품이 꽤 그럴듯한 이유로 줄줄이 퇴짜를 맞는다. 물론 작가의 엉큼한 상상이다.

방대한 분량,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서술로 읽기 힘들기로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렇게 거절당한다. “놀라운 일입니다, 발랑탱 루이 조르주 외젠 마르셀 작가님(그러고 보니 작가님의 풀 네임을 봐도 잠이 쏟아지네요).” 이 책을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무릎을 치며 따라 웃을만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이렇게 반려된다. “마술적인 내용, 초자연적인 내용, 신비주의를 넘나드는 내용을 덜어낸다면 훌륭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찬사 받는 이유가 곧 거절 사유가 됐다.

세계 문학사의 걸작들에 대한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오마주에 익살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그림을 곁들였다. 삶과 죽음을 고민한 셰익스피어가 코끝이 노란 해골을 흘깃 내려다보는 그림이 고전의 무게를 덜어주는 식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