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 국민소환제·생명권… 금기 깨고 ‘판도라 상자’ 열린다

입력 2018-03-20 18:23 수정 2018-03-20 21:19

낙태·사형제 문제와 직결돼 논쟁 불가피한 생명권 신설
공무원 노동 3권 강화 등 사회적으로 찬반양론 적잖아
다른 현안 모두 흡수하는 개헌 블랙홀 될 가능성도

청와대가 20일 공개한 대통령 개헌안에는 민감한 사회적 현안이 대거 포함됐다. 국회의원 소환을 가능토록 한 국민소환제와 낙태·사형제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생명권 신설, 공무원의 노동3권 강화 등은 사회적으로도 민감하고 찬반양론이 적지 않은 것들이다. 청와대는 22일까지 두 차례 더 대통령 개헌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사회적 논쟁이 불가피한 ‘판도라의 상자’와 다른 현안들을 모두 흡수하는 ‘블랙홀’이 열릴 수도 있다.

이날 공개된 대통령 개헌안의 전문·국민기본권 분야에는 국회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들이 포함됐다. 국민소환제는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제도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제는 2007년 시행됐지만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제도는 없었다.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국민이 국회의원의 직을 직접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가 논의해서 구체적인 요건을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국민발안제는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는 제도로, 이 역시 헌정사상 처음 도입되는 것이다. 국민소환제는 일종의 국회의원 탄핵제도이고, 국민발안제는 국회의원 발의권을 쪼개는 것이어서 국회가 이를 받아들일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신설된 생명권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대통령 개헌안에는 신체와 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로 생명권이 명시돼 있다. 문제는 생명권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낙태와 사형제 문제가 직결된다는 점이다.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할 경우 낙태는 현재처럼 범죄가 되고, 사형수의 생명권이 인정되면 사형제는 폐지돼야 한다.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생명권을 보장하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서의 낙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생명권 규정과 낙태 문제는 헌법재판소나 법원 판례를 통해 구체적 의미가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생명권 문제가 헌법에 들어간다고 해서 낙태 문제가 자동적으로 합헌, 위헌이 되는 게 아니다”며 “태아 생명보호를 어느 범위로 할지는 법률에 맡겨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문제도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이다. 대통령 개헌안은 원칙적으로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되 현역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인 경우만 이를 제한토록 했다. 조 수석은 공무원 보장범위에 대해 “현역 군인에 가까운 정도의 경우 법률에 위임토록 해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며 “문 대통령과 야당의 대선공약을 비교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경찰과 소방관도 직장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했고, 공무원 노동3권에 대해서는 “노동계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여야 합의를 강조한 것은 대통령 개헌안에는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반영하되 구체적인 적용범위는 정치권 논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사안은 모두 구체적인 헌법 조문을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파급력이 달라지게 된다. 청와대는 대통령 개헌안의 방향은 확정했지만 조문 작성까지는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진 정무기획비서관은 “헌법 개정안을 검토하다 보니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더라”며 “대통령의 뜻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법조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