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 근로자서 노동자로… ‘乙’ 노동자 권리 획기적 강화

입력 2018-03-20 19:01 수정 2018-03-20 22:53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헌법 전문과 국민 기본권 분야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오른쪽은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 분명히… 노조 목소리 더욱 커질 듯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中企 임금격차 해소 강제규정 가능
여성들에게 더 많은 노동권 부여… ‘공무원 노동3권’ 논란 여지


청와대가 20일 발표한 대통령 개헌 발의안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근로’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노동’으로 바꾸는 작업이 출발선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근로라는 용어가 고용주인 사용자의 입장이 많이 반영됐다는 점을 문제로 봤다. 이 단어를 노동으로 바꿔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등한 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노동권에 관해 전향적인 변화”라며 “형평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고 평가했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일이지만, 노동 현장에 미치는 파장은 작지 않다. 지금까지 암묵적인 갑·을 관계로 인식돼 온 사용자와 노동자 간 관계가 바뀌는 만큼 노조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근로라는 말에 녹아 있었다”며 “개헌안은 노동자를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도구로 보는 왜곡된 인식을 바꾸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개별 조항을 통해 구체적인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국가에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수준임금 지급 노력 의무를 부여한다는 조항이 사례다.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사이의 임금 격차 해소를 국가의 의무로 본 것이다. 해당 조항이 헌법에 명시될 경우 하위법령인 고용관련법에 민간기업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강제 규정을 넣을 수 있다.

한국의 장시간 일하는 관행과 미흡한 여성 노동 환경 개선 역시 국가의 의무로 규정했다. ‘일과 생활의 균형’에 관해 국가의 정책적 의무를 부여한 부분을 통해서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오는 7월부터 시행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무 위반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할 근거가 마련된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노동권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단녀(경력단절여성)’나 남녀 차별과 같은 용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여성 노동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시간 노동을 자랑하고 육아·가사에서 성별 분업이 너무 확고한 나라”라며 “이를 바꿔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공무원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인정하기로 한 점도 획기적이다. 노동제도 선진국인 프랑스나 독일조차 인정하지 않는 부분까지 도입했기 때문이다. 당장 공무원도 매년 5월 1일인 노동절(근로자의 날)에 쉴 수 있는 권리가 헌법으로 보장된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의 노동3권을 인정하게 되면 공무원도 파업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문제다. 현장과 맞닿은 동사무소의 민원 업무나 특정 부처의 행정 업무가 차질을 빚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인 2005년 제정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공무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인정했지만 단체행동권은 제한했다. 당시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라는 점이나 업무가 공공성을 띈다는 점, 근로조건이 법률이나 예산에 의존한다는 점 등을 제한 근거로 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 전문가는 “논쟁이 많은 부분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상위 법령에 성급하게 들어갔다”고 비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sman321@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