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박동우 전 美 국가장애인委 정책위원

입력 2018-03-21 00:00
박동우 전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위원이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의 호텔 커피숍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 장애인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박 전 위원이 아끼는 사진으로, 백악관 정책위원 재임 시절 버락 오마바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찍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뒷줄 오른쪽(점선 원)이 박 전 위원. 박동우 전 위원 제공
3세 때 열병을 앓고 왼팔이 마비된 소년이 있었다. ‘성공하면 장애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도록 도와주리라’ 생각한 소년은 매일 열심히 영어단어를 외웠다.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을 가서 성공한 한국인이 됐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어려움이 밀려 왔다. 신앙으로 주님을 굳게 의지해 꿈을 견고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박동우(66·조지프 박) 전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위원(2009∼2013)의 이야기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장애는 불편할 뿐이다. 주님을 의지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장애를 극복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에서 18세까지 살다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기에 양국에서 장애인의 삶이 어떤지를 잘 안다고 했다. 한국에선 ‘병신’ 소릴 많이 들었다. 체육시간엔 늘 교실을 지키는 외톨이였다.

하지만 미국 고등학교에선 수영을 못했는데 열심히 연습해 A학점을 받았다. 테니스와 마라톤, 골프까지 쳤다. 대학 때는 탁구선수였다. 동료선수 중 한 명이 미국 핑퐁외교로 유명했던 글렌 카원 선수다.

몸이 불편했던 터라 공익에 관심이 많았다.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1985년 영어를 못하는 한인들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운 퍼시픽벨을 상대로 5000만 달러 소송을 걸었다. 소송 상대가 자신이 근무하는 유명 통신회사 AT&T 계열사라 큰 화제가 됐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버락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 그를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위원에 임명했다. 이 직책은 2012년 타계한 고 강영우 박사가 거쳐 간 차관보급 자리로, 한국인 출신이 미국 정부에서 기록한 최고위직이다.

많이 나아졌지만 한국은 장애인이 살기엔 선진국에 비해 많은 제약이 있다고 했다. 어떤 제약이 있느냐고 묻자,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 때 일이다. 아나운서가 ‘대통령이 입장하시니 모두 기립해 손을 들어 큰 박수를 쳐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더라.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저는 손을 쓸 수 없어 박수를 칠 수 없었고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일어설 수 없었다”고 답했다.

또 “전국체전처럼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도 해외동포(장애인)들이 출전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주문했다. 장애를 가진 해외동포들이 모국에서 열리는 최대 스포츠 제전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도 미국처럼 대통령 직속 장애인위원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 부처마다 있는 장애인부서를 하나로 묶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앙 때문에 많은 유혹을 이겨내고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간증했다. 감당하지 못하는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고전 10:13)는 성경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2016년 5월 미국의 권위 있는 비영리기관인 AARP(은퇴자협회)가 실시한 ‘아시아·퍼시픽 영웅선발대회’에서 최다득표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교육위원 예비후보 신분이다.

“인생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나누고 어떻게 돕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한 박씨가 남긴 말이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사진=신현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