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주민 40%가 오염된 물 퍼다 식수로… 건기엔 그마저도 부족

입력 2018-03-21 00:01 수정 2018-03-21 10:21
수원 화산교회 이인기 목사(가운데)와 학생들이 지난 14일 케냐 중서부 북테소주 앙구라이 지역 세인트매튜스학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한 소녀가 앙구라이 알로테 지역의 오염된 식수원에서 물을 뜨고 있는 모습. 월드비전 제공
이인기 목사가 지난 15일 케냐 앙구라이 카타크와 양계장에서 닭 품앗이로 지역 주민의 자립을 돕는 ‘쿠쿠자립모임’을 주도한 타비다씨(가운데)를 만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지난 14일 오후 케냐 중서부 북테소주 앙구라이 지역에 있는 세인트매튜스학교 교정. 학생 80여명이 뛰어나와 몸을 흔들면서 노래했다. “당신을 만나게 돼 너무 기뻐요. 당신은 별처럼 빛나는군요.” 노래가 끝난 뒤 이인기(수원 화산교회) 목사는 “여러분이 이처럼 반겨주시니 황홀하다”며 “하나님의 크신 복이 학교에 함께하길 기도한다”고 화답했다. 이 목사, 신재권 월드비전 경기남부지역본부장 등과 함께 들른 앙구라이 지역은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약 450㎞ 떨어진 마을이다.


세인트매튜스학교는 월드비전의 지역개발 사업을 통해 2개 건물을 신축했다. 인근 마을엔 취약 가정의 아동이 많다. 그들 중에는 집안 생계를 위해 인근 담배농장에서 일하며 학업을 포기한 이들도 상당수다. 지역보건 상태도 열악하다. 주민 가운데 약 40%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다. 건기에는 그마저도 구하기 힘들어 하루 종일 물을 긷기 위해 우물 앞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현재 월드비전이 앙구라이 사업장에서 지원하고 있는 아동은 3800여명. 말빈 오덱(8)양도 그중 하나다. 이 목사는 후원을 결연한 말빈을 위해 준비한 샌들을 꺼내 직접 양발에 신겼다. 말빈은 기쁜 듯이 웃었다. 이 목사는 “아이가 사진보다 훨씬 예쁘고 똑똑해 보인다”며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길에 이 발이 쓰임받기를 바란다”고 말빈을 축복했다.

말빈의 아버지 존 오덱(29)씨는 농장일과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존의 수입만으로는 말빈과 말빈의 동생 클라디스(2·여)양의 육아비를 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침대 하나에 어머니를 포함해 가족 네 명이 몸을 누일 만큼 형편이 어렵다. 그럼에도 존은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의 학업은 책임지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말빈은 “열심히 공부해서 파일럿이 되고 싶다”며 “나중에 목사님처럼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감사를 전했다.

두 번째로 만난 아이는 나오미 파파(4)양이다. 월드비전의 관리 명단에 등록됐지만 아직 후원자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오미를 포함해 6남매로 구성된 여덟 가족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나오미의 아버지 위클리프 파파(49)씨는 선천적으로 발목이 굽어 목발을 짚고 다닌다. 얼마 전엔 오토바이 사고로 어깨와 다리를 또 다쳐 거동이 더욱 힘들어졌다. 나오미의 어머니 도르카스 파파(47)씨가 일용직과 농장일을 하며 돈을 벌지만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 물을 옮기다 넘어져 등을 다쳤다.

아픈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도 생계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날은 학교에 가는 목요일이었지만 아이들 6명 중 4명이 집에 남아있었다. 위클리프는 “교육비가 부족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한다”며 “아이들이 이웃을 도와가며 돈을 벌기도 한다”고 말했다.

앞서 오전에 들른 앙구라이 지역 아마고로 마을의 세인트마크키덱학교. 기존 교실은 5개였지만 학생이 크게 늘어나면서 진흙으로 2개의 가건물을 추가로 지었다. 하지만 전날 내린 많은 비로 교실로 쓰이는 가건물 일부에 물이 들어 차 학생들은 나무 아래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아이들에겐 저마다 꿈이 있었다. 장래 희망이 축구선수인 플래도 모리아(15)양은 “하나님과 함께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루브후스 음바다(56·여) 교장은 “지역에서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2011년 33명이던 학생 수가 현재 460여명으로 늘었다”며 “가장 필요한 것은 교실”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안내에 따라 앙구라이 알로테 지역의 샘을 찾았다. 50여 가구가 이용하는 샘은 한눈에 보기에도 오염된 구정물이었다. 이 목사는 “사람들이 이런 물을 마시는 건가”라고 탄식했다. 2015년부터는 샘 옆에 3ℓ들이 물통이 설치돼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약물을 넣어두고 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채워주고 있어 물이 많이 필요한 건기(11∼3월)의 경우, 3주 만에 동이 나 1∼2주는 오염된 물을 그대로 마셔야 한다. 또 건기에는 20ℓ들이 물통을 채우는 데만 1시간이 걸린다. 이 시기에는 주민들이 하루 종일 기다리는 일도 잦다.

지역 주민이 가져온 20ℓ들이 물통을 손수 들어본 이 목사는 “허리가 아프다. 어떻게 이걸 들고 매일 1시간여를 걸어가는지 모르겠다”며 “하나님께서 이들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시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비해 앙구라이 ‘시추공 마을’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월드비전이 지역개발 사업으로 태양광시설을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모니터링팀이 들렀을 때 3개의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700가구 4000여명이 쓰고 있고 다른 동네 주민들이 찾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지역 행정관 피터 오냐피디는 “월드비전이 수도시설을 설치한 뒤 충분한 수량 확보는 물론이고 여성들과 아이들이 매우 편해졌다”며 “물을 긷는 시간이 줄어 아이들이 공부할 시간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수도꼭지 앞에는 10여개의 물통이 길게 늘어져 있었지만 기다리는 주민들 표정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 월드비전의 사업의 ‘열매’

‘양계장 품앗이’로 수혜자에서 후원자로 성장하는 ‘쿠쿠자립모임’



월드비전이 해외 사업장에서 펼치는 소득증대 사업의 핵심 목표는 명확하다. 후원을 받던 이가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언젠가 남을 돕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지난 15일 케냐 앙구라이 카타크와 마을에서는 이 사업의 열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이 월드비전에서 후원을 받았다는 타비다(38·여)씨. 그는 2016년 카타크와에서 월드비전의 교육을 받으며 '양계장 품앗이'를 생각해냈다.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는 마을 주민 각자가 가진 암탉의 수는 적다. 하지만 주민들이 각자 가진 닭 1마리씩 일정 기간 한 주민에게 잠시 빌려주면 그는 수백 개의 계란을 갖게 된다.

닭들이 알을 낳으면 수혜자는 빌린 닭과 자신의 닭을 또 다른 주민에게 넘겨준다. 품앗이가 끝나면 모두가 다량의 계란을 보유하게 된다. 남은 일은 이 계란을 잘 활용해 다음 밑천을 만드는 것이다.

타비다의 아이디어에 동의한 16명은 지난해 3월 지역의 한 교회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모임 명칭은 '쿠쿠자립모임'이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쿠쿠자립모임의 품앗이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이 모임이 관리 중인 닭과 병아리는 1400여 마리다.

지난달 다 자란 닭의 수가 324마리였는데 어느새 360마리로 늘어났다. 참가 주민들도 20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단순히 닭을 빌려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맡긴 닭의 위생과 건강상태를 함께 관리한다.

쿠쿠자립모임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 다른 마을에서도 양계장 품앗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날 카타크와 마을은 모임의 운영 방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다른 마을 주민들로 가득했다. 강사로 나선 타비다의 모습에서 더 이상 수혜자가 아닌 베푸는 자, 후원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쿠쿠자립모임은 타비다에게도 영예로 돌아왔다. 그는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 부시아주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상'을 받았다.

타비다는 "작은 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앙구라이(케냐)=이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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