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에 빠진 개헌론자 정세균 의장의 선택은?

입력 2018-03-20 05:05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19일 국회의장실에서 개헌 시기 등을 논의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동철,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정 의장,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김지훈 기자

대표적 개헌론자인 정세균 국회의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6일 개헌안 발의를 지시하면서 사실상의 ‘개헌 시간표’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입법부 수장인 정 의장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이후에도 국회가 단일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기 전에 국회가 단일안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지만, 대통령 발의 후에도 국회 단일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회가 단일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제시하면 대통령도 국회를 존중할 수 있는, 말하자면 퇴로가 열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 의장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대해서는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리인데, 그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후엔 “(정해진 절차에 따라) 법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의회주의자로서 대통령 발의에 따른 개헌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른바 ‘국회 패싱’ 논란의 우회로를 열겠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 발의로 격화될 수 있는 여야의 ‘개헌 정쟁’에 대한 완충지대를 만들고, 대통령과 국회의 협치 통로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정 의장은 국회 개헌안 마련을 위한 해법으로 여야 각 당 지도부의 결단을 요구했다. 정 의장은 “국민 다수가 개헌을 원해도 국회가 개헌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국회의원 90%가 개헌을 원해도 지도부가 결단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제 개헌 논의의 ‘꼭지’를 따려면 각 당 지도부가 결심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국회 개헌 특위가 지난해 초 만들어져 ‘잘하면 내 임기 중에 개헌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요즘은 여야 대립이 심해져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향후 개헌안 논의 전망에 대해서 정 의장은 “야당은 지방선거 때문에 (개헌안 발의를) 할 수 없다는 건데, 사실 선거에 별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나는 아직도 잘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금이 아주 호기이므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오는 5월 말 임기를 마치는 정 의장은 “내 임기 중 개헌이 되는 것이 최선이지만, 혹시 안 되더라도 20대 국회에는 꼭 개헌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의장의 바람과는 달리 이날도 국회 개헌 논의는 진척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정 의장 주재로 회동했지만 개헌과 관련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요구하는 개헌안 국민투표 연기와 국회 국무총리 선출 제안 등을 수용할 뜻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야당도 한국GM 국정조사를 먼저 논의하자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국회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도 회의를 열었으나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시기와 주체, 정부형태 등을 놓고 여야 간 공방만 벌어졌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