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벼랑 끝 내몰린 가정, 자립 도와줍니다

입력 2018-03-20 00:00
최석진 성공회 신부(가운데)가 19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살림터 내 한 노숙인 가족 생활 공간에서 청년의 두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동혁 살림터 실장. 강민석 선임기자

40대 최모씨는 2015년 두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위기가족자립지원 공동체인 대한성공회 살림터(소장 최석진 성공회 신부)에 입소했다. 사업 실패로 이혼하고 집까지 잃은 뒤였다. 최씨는 살림터의 도움으로 자신을 돌아본 뒤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도배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새 직장도 얻었다. 3000만원을 저축해 자립에 성공하며 지금은 어엿한 원룸이사 개인사업자로 살고 있다.

30대 박모씨는 2016년 중학생 아들과 함께 살림터에 입소했다. 아들은 박씨와 말 한마디 섞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아들은 살림터에서 상담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박씨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등 살갑게 군다. 1000만원 넘게 저축을 한 박씨는 지난해 살림터 매입 임대주택에 입주했다.

19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언덕길을 올라 살림터를 찾아가자 ‘김밥○○’ 등 가족들이 직접 지은 이름표가 붙은 13.2㎡(4평) 남짓한 방들이 보였다. 한 층에 8개씩 총 16개의 방에는 부도나 빚 등으로 살 곳을 잃은 11가정 28명이 살고 있었다.

살림터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주엽 성공회 신부가 서울 중구 서소문공원에서 숙식하던 노숙인 가족을 데리고 함께 생활하며 시작됐다. 동작구의 한 고시원을 빌려 운영하다 서울시와 봉천동 나눔의 집 등의 도움으로 2003년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부부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모두 입소할 수 있는 시설은 살림터가 유일하다.

이곳 숙식은 무료다. 취업 후 수입 절반은 본인 명의로 적금해 자립 준비를 한다. 지난해는 12가정 중 7가정이 신용을 회복했다. 살림터가 제공하는 가족회의와 심리치료, 학업이나 법률 지원도 큰 도움이 된다. 김동혁 살림터 실장은 “처음 입소할 때 자활 의지도 부족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던 사람들이 놀랍게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살림터 내 사회복지사인 정현우씨는 경제적 문제로 일가족이 함께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 살림터로 오면 될 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고 한다. 그러기에 직접 찜질방 등을 찾아다니며 살림터를 알리고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이가 많다고 한다.

최 신부는 원래 가톨릭 신부였으나 성공회의 대표적 사회복지기관인 ‘나눔의 집’ 모델을 연구하며 감명을 받았다. 이후 호주 멜버른 신학대에서 성공회 성직자 과정을 밟아 2010년 성공회 신부가 됐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최 신부의 소명은 어려움에 부닥친 이에게 공감하고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최 신부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마음 쓰는 곳에 소명을 따라 참여하는 것이 참된 선교의 모습”이라며 “슬퍼하고 고통 받는 사람이 온전히 자리를 잡을 때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