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1인 천하’, ‘어차피 푸틴’ 대선… 중·러 장기독재 개막

입력 2018-03-19 05:05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과 왕치산 국가부주석(왼쪽)이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전체회의에서 각각 주석과 부주석으로 선출된 뒤 리커창 총리(오른쪽) 등의 박수를 받고 있다. 웃고 있는 시 주석, 왕 부주석과 달리 리 총리의 표정은 어두워 보인다. AP뉴시스
양샤오두. AP뉴시스
사진=AP뉴시스
‘시진핑의 오른팔’ 복귀… ‘1인 천하’ 틀 다지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에 만장일치로 재선출되며 장기집권에 시동을 걸었다. 시 주석의 ‘인생 동지’이자 ‘오른팔’인 왕치산 전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는 국가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개헌으로 장기집권 기반을 다진 시 주석은 최고 사정기구인 국가감찰위 주임과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에도 측근들을 배치해 명실상부한 ‘황제급’ 절대권력 구도를 갖추게 됐다.

시 주석은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5차 전체회의 표결을 통해 2970명 대표의 만장일치로 국가주석과 군사위 주석에 재선출됐다. 지난해 19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재선출된 시 주석은 최근 개헌으로 국가주석 임기제한도 없어져 당 총서기-국가주석-군사위주석 ‘3위 일체’ 지도체계를 구축하게 됐다.

핵심 요직에는 시 주석 측근들이 발탁됐다. 특히 모든 시선은 왕치산에게 쏠려 있다. 왕치산은 산시성 하방(下放·공직자를 일정기간 지방에 보내는 것) 시절, 5년 후배인 시 주석과 한 이불을 덮고 밤새 토론했던 끈끈한 인연이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난 왕치산은 전인대에서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됐다. 퇴임한 상무위원이 국가부주석을 맡는 것은 파격이다. 69세인 그의 복귀로 중국 최고지도부의 불문율이었던 7상8하(67세는 유임, 68세는 은퇴)도 유명무실해졌다.

왕치산은 전인대 개막식에서 7명의 상무위원 다음으로 입장해 이미 ‘제8 상무위원’이란 별칭을 얻었다. 지난 5년간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시 주석 ‘1인 권력’ 구축에 공헌한 그는 우선 외교 분야를 총괄하며 미·중 무역갈등 해결에 주력할 전망이다. 그는 20여년간 경제·외교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으며 ‘해결사’ ‘소방수’란 명성을 얻었다. 따라서 왕치산이 향후 특정 분야가 아닌 국정 전반을 조율하며 시 주석의 절대권력과 장기집권 플랜을 완성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저승사자’였던 왕치산이 현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적들의 저항 의지가 무력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커창 총리는 18일 재선임되며 자리를 지켰지만 시 주석의 측근들에게 실권을 넘겨주고 명목상 2인자에 머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지고 시진핑-왕치산 구도가 탄력을 받는 모양새라 할 수 있다.

국가감찰위원회 초대 주임에는 양샤오두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 겸 감찰부장이 선임됐다. 국가감찰위는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행정부인 국무원의 감찰 조직 등을 통합한 거대조직으로 공적인 영역의 모든 사람을 조사대상으로 하며 재산 동결과 몰수 권한까지 갖고 있다. 당초 상무위원인 자오러지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겸임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치국원인 양샤오두가 선임됐다. 양샤오두는 왕치산이 중앙기율위 서기로 있을 때 부서기로 보좌했다. 상하이 지역 ‘홍색자본가’(공산당의 노선을 적극 지지하는 자본가) 집안 출신인 그는 티베트 오지에서 25년간 지냈다. 2007년 상하이시 서기로 부임한 시 주석은 당시 양샤오두 통일전선부장의 청렴함과 기개를 보고 ‘크게 쓸 인물’로 평가했다고 한다.

인민해방군의 최고 지휘부인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는 시 주석의 호위대로 불리는 쉬치량 현 부주석과 장유샤 장비발전부장이 선임됐다. 저우창은 최고인민법원장, 장쥔 전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는 최고인민검찰원 검찰장에 각각 선임됐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어차피 푸틴” 투표율 저조… 젊은층 ‘넥스트 푸틴’ 무관심

모스크바 북서쪽 트베르주에 사는 여대생 마리아 코노발로바(19)는 18일 오전(현지시간) 집 근처 대선 투표소로 향했다. 다른 후보자에게 표를 던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마리아는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대통령의 골수 지지자는 아니다. 다만 푸틴이 아닌 다른 지도자는 본 적이 없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푸틴을 ‘요지부동의 권력’으로 인식하고, 대안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푸틴의 권력에 지나치게 주목하는 것 같다”면서 “그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없다. 더 나은 지도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푸틴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에선 푸틴의 압승이 확실시된다. 그는 1999년 6대 러시아 총리에 취임한 이후 20년째 권력을 잡고 있다. 이번에 임기 6년을 추가하면 26년을 집권하게 된다.

러시아 정계에서 푸틴이 독주하는 가운데 정치에 관심 없는 러시아 젊은이들이 푸틴을 덮어놓고 지지하는 현재의 상황이 오히려 그의 정치수명을 단축시키고, 러시아의 미래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푸틴이 발전시킨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 푸틴을 지지하는 젊은 세대에게 푸틴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면서 “푸틴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일 뿐 러시아 젊은층이 하나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마리아와 같은 젊은 세대의 지지는 그녀가 일자리를 얻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다음 대선까지는 푸틴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푸틴이 국가를 강하게 만들고 경제를 발전시켰기 때문에 푸틴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은 반대로 경제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러시아가 고립된다면 푸틴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러시아 젊은층은 푸틴의 지지 세력이기도 하지만 야권의 반정부 시위의 한 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연구원 콘스탄틴 가제는 “지지층에게 푸틴이 신화적 인물일 수 있는 건 푸틴 없는 러시아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의 지지율이 7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지만 투표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추세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2012년 대선 투표율은 약 65%였지만 2016년 총선 투표율은 50%에 못 미쳤다. 러시아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는 이번 대선 투표율을 52% 수준으로 예상했다. 이번에 투표율 70%, 득표율 70%를 달성하는 것이 크렘린궁의 목표다.

WP는 “투표율이 낮은 것이 푸틴이 인기가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면서 “‘어차피 푸틴인데 뭐하러 투표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인이 대다수”라고 전했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은 푸틴을 지지하지만 투표나 정치엔 관심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을 끌어올려 푸틴에 대한 신뢰를 숫자로 입증하려 고군분투했다. 정부 관계자는 가디언에 “크렘린은 젊은 사람들이 2024년 대선까지 정부를 지지해주길 원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가디언은 또 “푸틴을 이을 지도자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외교 갈등을 비롯해 안팎으로 해결할 문제는 쌓여만 간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미래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