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가해자 또 사망… 피해자는 비난에 이중 고통

입력 2018-03-19 05:05

‘조사 중’ 한국외대 교수 숨져… 폭로 여성들에 되레 비난 화살
“죽음도 비난도 정당치 못해… 최소한 인권은 존중해 줘야”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던 한국외대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이 극단적 선택을 한 건 배우 조민기씨 이후 두 번째다.

인터넷상에서는 가해자 죽음의 책임 소재를 묻는 엉뚱한 논쟁도 발생했다. 자살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미투 운동의 탈출구가 돼서도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경찰과 한국외대는 SNS에서 성희롱 발언이 폭로된 A교수가 전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18일 밝혔다. 유서는 없었지만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글이 그의 휴대전화에 메모 형식으로 남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외대는 “교육자로서 의혹에 대한 극심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을 향해 제기된 모든 의혹 관련 조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자 일부는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여성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한국외대 SNS에는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 교수 죽음의 책임을 제보자들에게 뒤집어씌우며 비난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며 “제보자들은 아무 잘못이 없음을, 누구도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는 글이 게재됐다.

글쓴이는 “우리 학생 모두는 A교수의 과거 행위에 대한 조사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을 뿐 그에게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라는 요구를, 자살해서 사죄하라는 따위의 요구를 한 적이 없다”면서 “(A교수의) 가족들이 겪을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만 제보자들이 마음의 부담과 죄책감을 갖지 않기를, 떳떳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그의 죽음이 무책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평소 미투 운동을 지지하던 한 학생은 “죽음은 안타깝지만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잘못을 했으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한 가해자를 비난하거나 미투 운동에 동참한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 모두 정당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생명이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자살을 했다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며 “자살했다는 이유로 모든 잘못이 덮어지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폭력에 대해 누구나 지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서 “다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인권을 최소한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가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비난의 톤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