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서승원] 북·일 간 중매역할도 맡아야

입력 2018-03-19 05:00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과 같은 뉴스를 듣고 있노라면 동아시아 정세가 울돌목처럼 소용돌이치는 듯하다. 대북 압박파의 선봉장을 자임하던 일본 아베 정권도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최대한 압력을 가하자고, 미·일 양국은 100%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공식화시켰다. 그리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와중에 아베 총리에게 전화로 그 사실을 통보했다. 한국, 미국, 중국이 대북 대화파가 되고 일본만 남겨진 모양새가 되었다.

당연히 일본 배제론이 도마에 올랐다. 이어 일본 정부가 북·일 정상회담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체로 예견된 일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1960년대 후반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친동생)도 대미 공조 하에 중국의 유엔(상임이사국 지위도 포함) 가입을 결사적으로 저지하고자 했었다. 이가 실패로 끝나자 사토 총리는 이번엔 중국과 수교 교섭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총리직은 중·일 수교를 기치로 내건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넘겨졌다.

바로 그 직후 일본 측이 지금도 잊지 못하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비밀 방중 직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일본이 미국의 전화 통보를 받은 것은 발표 30분 전이었다. 이에 보란 듯이 다나카 정권은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수교했다. 미·일 양국을 경쟁시킨 저우언라이(朱恩來) 중국 총리의 연출이었다. 역사에 데자뷔가 있다면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할 사람은 아베가 아닌 이시바 시게루나 고이즈미 신지로(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가 될지도 모른다.

북·미 간 중매를 맡기 시작한 순간 북·일 간 중매는 필연이 아닐까 한다. 처음 경험하는 일도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김정일과 고이즈미의 만남에 기여를 했다. 문재인정부가 저우언라이와 같은 연출자가 되었으면 한다. 북·미, 북·일 수교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불리는 미국 중심의 동맹 체제는 중국과 북한을 주적으로 한 것이다. 1970년대 미·일 양국이 중국과 수교했으므로 이번에 북한과 수교하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종식되는 셈이다.

일본 측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내용적인 차원에서 유지하려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한·미·일 협력 체제로 중국·북한을 억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이 체제 내에 포섭하는 방식이다. 과거 중·일 수교 당시 중국은 주일미군을 용인했다. 만약 북한도 중국처럼 주한미군의 존재를 용인한다면 평화 체제로 이름을 바꾸더라도 이 체제는 살아남게 된다. 단, 이는 중국 측의 이해관계에는 반한다. 지난한 과제이긴 하나 중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베 신조 총리가는지난 16일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일 평양선언’에 대해 언급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발표한 선언이다. 현 아베 총리도 당시 관방장관으로서 동행한 바 있다. 앞으로 이 선언을 출발점으로 수교 교섭을 진행시키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다. 당시 양측은 1965년 한·일 수교 방식을 원용하여 청구권 상호 포기와 일본의 경제협력(무상원조 및 유상차관) 실시에 약속했다.

하지만 북·일 수교는 북·미 수교 이상으로 지난한 과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이전의 평양선언을 좌초시킨 것처럼 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일본에서 납치 문제는 핵·미사일 문제 이상으로 주가가 높다. 일본의 경제협력이 비핵화를 유도할 당근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납치 문제 해결 없이 당근을 줄 상황이 아니다. 경제협력의 기준도 까다로워졌다. 무엇보다 재정 여건이 예전만 못하다. 일본의 경제협력을 전제로 한 북한 경제 발전 구상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다.

서승원(고려대 교수·글로벌일본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