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균의 현장보고] “심신미약 임산부 상대 임상 동의서 조작 지시”

입력 2018-03-18 20:18
<그래픽=이윤지>

지난 2007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에서 진행된 글로벌 임상시험 3상 연구 과정에서 현 서울대병원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 H교수가 심신미약 상태의 임산부 환자를 연구에 동원코자 연구원에게 환자 동의서를 조작토록 지시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H교수의 지근거리에서 업무를 담당했던 제보자는 “최근 서울대병원 정신과에서의 폭행 사건이 드러나는 등 환자에 대한 나쁜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었다고 판단, 폭로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임상시험(Clinical Trial)이란, 임상시험에 사용되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해당 약물의 약동·약력·약리·임상적 효과를 확인하고 이상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이나 연구를 말한다.

◇“환자를 지키고 싶었다”=“이건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해 아이를 지키고자 먹던 약까지 끊은 환자인데, 연구로 인해 산모나 태아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비윤리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무엇을 위해 환자를 연구에 동원하려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보자는 2007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H교수를 두고 “환자에 대해 부적절하게 행동한 것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오래된 일이지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제약사의 제3상 임상시험 연구에 쓰이던 약물은 정신분열병과 정신병적 양상이 수반되거나 수반되지 않은 양극성 장애와 관련된 급성 조증 혹은 혼재 삽화(episode)에 사용되는 것이었다. 연구에 필요한 피험자는 양극성 장애 1 또는 2 상태의 환자여야 했다.

임상시험 연구 윤리 원칙에 따르면, 피험자의 보호는 인간 존엄성의 존중과 개인 자율성(autonomy)의 존중, 그리고 자율성이 저하된 인간에 대한 특별한 보호로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 연구자는 피험자에게 시험의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근거한 자발 동의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란 ‘정보’, ‘의사결정능력’,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피험자가 동의 능력을 갖고 있을 않을 경우다. 그렇더라도 피험자의 적법한 대리인, 즉 배우자 등에게 동의를 얻어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절차적, 윤리적으로 옳다. 설사 응급상황일지라도 연구자는 시험심사위원회의 계획서 승인 하에 치료목적의 시험약을 사용해야 한다.

“어떤 연구든 상관없이 임상 시험 전에 환자에게 연구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연구 동의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자기 의사 결정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제보자에 따르면, 당시 문제가 된 환자는 임신 중이었고, 양극성 장애 1로 급성 조증이 있던 터. 제보자가 동의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대면했을 때 환자는 정상적인 대화나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동의서에 본인의 성명조차 제대로 쓰기가 힘든 상태. 제보자는 “연구 선정기준에 위배되고 어느 의료인이 봐도 연구에 참여할 동의능력이 없는 환자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수의 임상시험을 진행했던 한 관계자는 “임산부를 임상시험에 참여시키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라며 “만약 임신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연구를 강행했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앞서 정신과에서 의료진으로 활동했었던 제보자도 “환자가 임신한 경우 정신과 약이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줄이거나 약을 잠시 중단하거나 매우 조심해서 쓴다. 정신과 약 자체가 태아에 선천성 기형을 초래하는 독성이 있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환자가 연구에 참여하게 되어 시험약 또는 위약에 무작위로 배정되면, 현재 급성 조증인 환자의 상태도 나빠지고 태아도 어떤 부작용을 받지 모르는 상황이 초래할 수 있었다. 제보자는 “이런 환자를 임상 시험에 등록 시키는 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가능한 많은 환자를 연구에 빨리 등록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H교수의 지시다. 그는 동의서에 환자를 대신해 환자 이름을 가짜로 서명하도록 강요했던 것. 이를 거부하자 H교수는 다른 직원과 외래에 있는 환자가 보는 외래 복도 앞에서 욕설로 퍼부었다는 게 제보자의 주장이다. “모욕감과 당혹감보다 TV에서 명의라고 소개되는 H교수가 정신과 환자의 인권이나 고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성공, 업적, 돈만 생각한다는 사실에 큰 실망을 느꼈다”며 “지금도 환자의 인권 측면, 연구자의 윤리적 의무를 생각할 때 H교수의 행동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실직 무릅쓰고 부당한 지시 거부=제보자는 그 일이 있고난 일주일 후인 2007년 2월 사표를 냈다. 국내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의 부당한 지시와 이를 거부하고 환자를 보호한 계약직 직원의 용기. 환자와 인간에 대한 이들의 상반된 태도는 연구와 의료가 과연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H교수의 입장을 듣고자 병원과 진료실에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어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또한 전자우편과 문자메시지로도 각각 질의서를 보내 H교수의 입장을 확인코자 했지만, H교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임상시험 과정은 제약사가 임상시험 수행 기관인 의료기관에 의뢰를 하면, 의료기관은 식약처에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 식약처가 이를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식약처는 피험자 보호를 비롯해 안전성과 유효성의 적절성 등 연구 전반을 검토케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임상연구 3상은 사람에게 약을 실험하는 것으로 매우 엄격하게 진행된다”며 “이는 연구결과에 따라 허가를 받으면 약을 팔수 있는 마켓이 커진다. 연구 과정에 현저한 문제가 있었다면, 해당 제약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귀띔했다. 이 전문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과연 이 임상시험을 제대로 관리·감독했는지도 따져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현재 이 사안은 국회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성엽 위원장은 분당서울대병원 측에 해당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의 실험 동의서 일체를 국회에 출석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분당서울대병원 측은 2007년 H교수의 임상시험 3상 연구 목록을 제출했지만, 환자 동의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2007년 상황 제보 일문일답

- 환자는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H교수도 인지하고 있었나.

“그 환자는 외래(진료)에 왔었다. 조울증에서 급성 증상으로 환청 등의 정신과적 증상이 있었다. 환자 본인은 임신 사실을 인지, 복용하던 약을 끊었고, 그 결과 정신과적 증상이 심해진 상황이었다.”

- 환자는 어떤 상태였나.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본인의 이름을 종이에 써보라고 했는데,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진료를 본 다른 의료진도 환자 인터뷰 후에 ‘이 환자는 본인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고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였다. 난 연구원 이전에 정신과의 폐쇄 및 개방병동에서 의료진으로 근무했었기 때문에 입원을 요하는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 있었다.”

- 임상시험 선정 시, 환자가 거절하면 의료진 및 연구진은 어떤 행동을 취하나.

“환자에게 임상시험 동의를 설명해서 거절 의사를 보이면 권유나 강요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 해당 환자는 연구에 필요한 케이스였고, H교수로부터 임상시험 동의서를 받아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철회할 것을 요구하자, 서명을 위조해서라도 동의를 받아오라고 재차 강권했다는 건가.

“(H교수가) 바쁜 탓에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해 이러한 지시를 내린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H교수는 외래에서 환자를 진료했었고 입원 처리도 직접 했다.”

- 왜 H교수가 환자를 연구에 포함시키려고 했을까.

“H교수가 본인의 업적을 쌓거나 연구에 환자가 배당될수록 성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쿠키뉴스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