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셀프연임’ 사외이사는 ‘거수기’… 금융권 고질병 여전

입력 2018-03-16 05:01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 관련 협회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 9개 지주사 점검·대책
사외이사 추천 때 CEO 배제… 적격성 심사 주요 주주로 확대
재벌 총수 일가 심사 강화키로… 임원추천委에 CEO 참여 막아
사외이사·감사위원 독립성 높여 최고경영자 ‘셀프 연임’ 등 예방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셀프 연임’하고 이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문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금융지주회사들은 CEO 임기 만료 40일 전이 돼서야 부랴부랴 경영승계 절차를 시작했다. 해외 금융회사들이 장기간에 걸쳐 내외부 경쟁 및 이사회와의 소통 등을 거쳐 CEO를 뽑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가 이처럼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사외이사 추천 때 CEO를 배제하고, 금융회사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을 확대한다. 대기업 총수 일가도 심사 대상이 된다.

금융위원회는 15일 이런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그간 대주주나 경영진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보니 일반주주나 금융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컸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두 달간 금융지주회사 9곳의 지배구조 현황을 점검한 결과를 보면, 금융회사 CEO의 영향력은 비대한 반면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의 견제기능은 약했다. 금융회사 감사위원들은 평균 2.6개의 위원직을 겸직하는 바람에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또 사외이사는 회사로부터 경영전략, 위험관리 등 중요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 CEO가 사외이사 후보 선출을 위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등 사외이사의 독립성도 훼손됐다.

정부는 우선 금융회사를 실제로 지배해온 재벌 총수 일가에 대한 심사를 강화키로 했다. 정부는 2년마다 금융회사 최대주주 자격을 심사해 왔다. 그러나 심사 대상이 ‘최다출자자 1인’으로 한정돼 재벌 총수 계열사인 금융사들은 실제 지배력과 무관한 개인 등이 심사를 받는다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금융위는 심사 대상을 최대주주 전체 및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주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삼성생명의 대주주 심사 대상이 된다. 이제까진 최대주주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만 심사를 받았다.

심사 요건도 강화한다. 대주주가 개정법 시행 이후의 행위로 인해 횡령·배임 등으로 금고형 이상의 처벌을 받으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결격사유가 발생한 최대주주는 보유 의결권 중 10%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또 사외이사·감사위원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CEO가 이들을 선출하는 임원추천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최근까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윤종규 KB금융 회장 등이 임추위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셀프 연임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었다. 그러나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사외이사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게 문제시됐고 경영진의 사외이사 선출과정 참여가 독려됐었는데, 이젠 반대 상황”이라며 “최근 문제가 된 특정 인물 때문에 임시방편적 정책을 내놓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연봉이 5억원 이상이거나 성과보수 총액이 연 2억원 이상인 금융회사 임원을 공시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높은 연봉에 걸맞은 성과를 소비자에게 내놓는지 검증한다는 취지다. 또 CEO 승계 프로그램 내실화를 위해 회사 내 CEO의 자격기준에 대한 규범을 마련토록 한다. 주주권 행사 요건에 ‘주식 액면가 1억원 이상’을 추가해 소수주주도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금융위는 다음 달 말까지 관련 시행령 및 감독규정을 입법 예고하고, 오는 5∼6월엔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