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들이 15일 법정에서 “국민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특수활동비가 국정 운영에 쓰일 줄 알았다고 항변했다. 이병기 전 원장은 “심지어 (대통령에게)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 심리로 열린 국정원 특활비 사건 첫 공판에는 이병기·남재준·이병호 전 원장이 출석해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이들은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청와대에 특활비 36억5000여만원을 건넨 혐의(뇌물공여) 등으로 지난 1월 기소됐다.
본격 심리 절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남 전 원장 등은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남 전 원장 변호인은 “피고인은 국민에게 실망을 끼쳐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며 “결과적으로 잘못된 예산 집행이라는 점은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의 말을 대신 전했다.
이병기 전 원장은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청와대에) 올려드린 돈이 국가 운영을 위해 제대로 쓰였다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며 “그와 반대로 쓰인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 특활비 일부는 차명폰 요금, 의상실 운영, 기 치료 대금 등에 쓰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이 증빙자료가 필요 없는 특활비의 특성에서 비롯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병호 전 원장은 “개인비리 문제라기보다 오랫동안 미비했던 제도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국정원장에 임명됐다면 그분이 지금 법정에 서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특활비의 뇌물성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변호인들은 “청와대 요청으로 특활비를 준 사실을 인정하지만 유용(流用)될지 몰랐다”며 “범행에 대한 인식과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정당한 돈이었다면 왜 현금을 준비해 청와대 뒷길에서 은밀한 방법으로 주고받았느냐”며 “국정원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지위 등을 고려했을 때 대가성이 인정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이병기 “朴에게 배신감… 특활비, 국정에 쓸 줄 알았다”
입력 2018-03-16 05:05